하예라노트 홈 — 미스테리·사회·정치·경제·심리·과학·수메르·외계인·진화론·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불교·음모론·역사·철학·공산주의·중국·일론머스크 아카이브
하예라노트 하예라 노트 hayeranote 미스테리 사회 정치 경제 심리 과학 아카이브

굶주림과 빚독촉 속에 하나님을 만났더니

2026-03-05
굶주림과 빚독촉 속에 하나님을 만났더니 — 충격실화, 종교
6·25 전쟁의 참상과 피난민 청년 강신경

지독한 가난과 절망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
1950년 6·25 전쟁.
그 전쟁은 한 청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강신경.

그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독한 가난이 시작됐다.

연고 없는 타향에서
굶는 날이 더 많았고,
그날 밤 잘 곳조차 없는 피난민 생활이었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그 시간 속에서
그가 붙잡은 것은 단 하나였다.

기도.

비바람도 막기 어려운 낡은 천막 안에서
그는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고 한다.

정원사로의 부르심과 척박한 땅에서의 시작

사람들의 비웃음과 재정적 결핍을 기도로 돌파한 교육·선교의 첫걸음
그리고 마음속에 이런 부르심을 받았다.

“너는 이 땅의 정원사가 되어라.
버려진 고아와 가난한 아이들을
꽃처럼 가꾸어라.”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주머니에는 돈도 없었고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다”라며 비웃었다.

그런데도 그는 시작했다.

안흥교회를 세우고
보육원을 세우고
농축기술학교를 세웠다.

돈이 없어 학교 공사가 멈춘 적도 많았다.
쌀 살 돈조차 없어 가족들과 함께
눈물로 금식하며 기도했던 날도 있었다.

신한대학교의 모태인 신흥보건전문학교 설립

1972년 눈물과 무릎의 순종으로 일구어낸 인재 양성의 주춧돌
그렇게 버티며 세운 학교가

1972년
신흥보건전문학교였다.

지금의 신한대학교다.

빚 독촉은 계속됐고
환경은 열악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믿음으로 버텼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나라를 세우는 길이다.”

종합대학교 승격과 평생을 바친 하나님의 청지기

2014년 종합대 전환의 결실과 모든 영광을 은혜로 돌린 믿음의 여정
무릎으로 기도하며 순종한 결과
작은 전문학교는 성장했고

2014년
종합대학교인 신한대학교가 되었다.

가난이 그를 쓰러뜨리려 할 때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를 더 강하게 만드셨다.

그는 평생
10개가 넘는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렇게 말했다.

“굶주리고 헐벗던 청년 강신경을
들어 쓰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
그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결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신실하신 역사

아무것도 없는 약한 자를 들어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
지금도 그의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하나님은 지금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을.

고(故) 강신경 목사
신한대학교 설립자
성심당 비슷한 감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