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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처리하고 '혐오의 바다'에 처박힌 한국호

2026-07-19
어른들을 처리하고 '혐오의 바다'에 처박힌 한국호 — 조작선동, 사기범죄, 사회
"몇 살이세요?"
이 질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십수 년 동안 장유유서와 보수, 위계라는 오래된 질서를 열심히 부숴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늙은 선장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다음 선장이 로봇이라는 것이다.

위계를 끌어내린 AI 알고리즘 선배

예전에는 나이 많은 사람은 베풀고 책임졌고, 어린 사람은 존중하고 배웠다. 밥을 사는 선배, 챙겨주는 형과 언니, 후배의 실수를 대신 짊어지는 상사. 이런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같이 식사하자고 하면 부담이 되고, 조언은 오지랖이며, 말 한번 잘못하면 영포티가 된다. 결국 신입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직에 혼자 던져졌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른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 나라가 뒤집혀서 젊음이 곧 옳음이고, 나이 드는 것은 성숙이 아니라 유통기한이 지나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문화대혁명 때 어른들을 끌어내렸던 홍위병들도 결국 늙었다. 권위를 조롱하던 우리도 지금 모두 나이 들고 있다.

혐오, 고소, 차단의 바다를 방황하는 한국

한국은 위계를 버리면서 그 자리에 아무것도 깔지 않았다. 공경도 버리고 섬김도 배우지 않았다. 남은 것은 계산뿐이다. 손해 보지 않기, 엮이지 않기, 상처받기 전에 먼저 차단하기. 서로에게 아무 의무도, 아무 기대도 없는 사람들. 우리는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로봇같이 되어버렸다.

갈등이 생기면 대화 대신 녹취와 고소가 등장하고, 세대 간의 대화는 혐오 표현의 교환이 된다. 중재해줄 어른이 사라진 사회에서, 모든 다툼은 법정과 인터넷 여론이라는 가장 비싸고 잔인한 심판대로 간다. 위계를 없애면 수평적 연대가 올 줄 알았지만, 온 것은 사기와 고소와 외로움이었다.

성경에서 권위를 배운 미국과 영국

미국과 영국의 권위 체계가 그나마 성경과 가장 비슷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그래서 왕도 법 아래에 있고, 권력자도 비판받는다. 동시에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먼저 섬긴다. 그들은 위계를 그냥 없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믿음과 사랑의 문법을 깔았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봉사하는 문화. 위계가 없어도 사회가 굴러가는 이유는, 바닥에 "사람은 존엄하다"는 공통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출처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말한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레위기 19:32)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태복음 23:11)
이것이 노예와 전쟁 살육이 판치던 2천년 전의 가르침이라는게 놀랍다.

아래에서 위로는 공경이 흐르고, 위에서 아래로는 섬김이 흐르는 것. 위계도 아니고 무질서도 아닌, 사랑의 질서다.
답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먼저 씻기신 것처럼, 누군가 먼저 섬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길 잃은 한국에게 필요한 새 지도는, 이천 년 전에 이미 그려져 있었다.
녹취, 신고, 보복을 칭찬하는 알고리즘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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