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니었으면 한국은 공산화 확률 65%?
러시아가 일본에 졌으면 공산화 확률 40%
한일병합이 없었다면 한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까?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당시의 국제정세와 주변국의 힘을 놓고 보면 대략의 확률은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일본·러시아·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변수는 러시아였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고, 명성황후 역시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외교 노선을 밀었다. 문제는, 그 러시아가 곧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가 될 나라였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일본에게 이겼다면 공산화 확률 65%
러일전쟁의 승패가 뒤집혔다면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진다. 한반도가 러시아의 강한 영향권에 들어갔을 것이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소련의 궤도로 빨려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이 조건을 붙이면 공산화 가능성은 60~70%까지 올라간다.
물론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핀란드와 발트 3국처럼 독립을 지켜낸 사례도 있다. 그러니 '러시아 영향권'을 곧바로 '공산화'로 연결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이고, 대한제국이 독립을 유지한 채 근대화에 성공했을 가능성도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유럽의 한복판, 서방 세력의 시야 안에 있었다. 소련과 단둘이 국경을 맞댄 약소국 조선이 과연 그 틈을 비집고 나올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이겼다면 23%
청일전쟁 때의 중국은 그냥 청나라 왕조였고, 앞서 말한 '공산권 중국'은 1949년 이후 얘기다. 그래서 청이 이겼다 해도 공산화로 곧장 이어지는 통로는 없다. 청이 이겼어도 조선은 청의 속방으로 다시 묶였을 뿐이고, 그 청마저 1911년 신해혁명으로 무너지니 조선은 다시 일본·러시아의 표적이 됐을 것이다. 결국 공산화를 가른 진짜 축은 청의 승패가 아니었다. 그래서 청이 이겼을 경우 공산화 가능성은 오히려 낮은 20~25% 정도다.
중요한 것은 소련·중국이라는 공산권과 육상으로 맞닿은 완충지대는 상당수가 공산화되거나 반으로 쪼개졌다. 몽골은 1924년 세계 두 번째 공산국가가 됐고, 북베트남과 북한이 그 뒤를 이었다.
일본이 공산화를 막은 확률은 적지 않다.
식민지배가 남긴 수탈·주권 상실·분단이라는 대가까지 저울에 올리면 "일본이 나았다"고 가볍게 말할 수는 없다.
만약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이겼다면 한반도 전체가 소련 궤도로 빨려 들어갈 확률이 65%였다. 그 경우 지금의 대한민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러시아를 꺾어 그 흐름을 끊은 것이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식민지배가 남긴 수탈·주권 상실·분단이라는 대가까지 저울에 올리면 "일본이 나았다"고 가볍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산화'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일본이 이긴 쪽이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보다는 덜 나쁜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른다.
한일병합이 없었다면 한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까?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당시의 국제정세와 주변국의 힘을 놓고 보면 대략의 확률은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일본·러시아·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변수는 러시아였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고, 명성황후 역시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외교 노선을 밀었다. 문제는, 그 러시아가 곧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가 될 나라였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일본에게 이겼다면 공산화 확률 65%
러일전쟁의 승패가 뒤집혔다면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진다. 한반도가 러시아의 강한 영향권에 들어갔을 것이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소련의 궤도로 빨려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이 조건을 붙이면 공산화 가능성은 60~70%까지 올라간다.
물론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핀란드와 발트 3국처럼 독립을 지켜낸 사례도 있다. 그러니 '러시아 영향권'을 곧바로 '공산화'로 연결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이고, 대한제국이 독립을 유지한 채 근대화에 성공했을 가능성도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유럽의 한복판, 서방 세력의 시야 안에 있었다. 소련과 단둘이 국경을 맞댄 약소국 조선이 과연 그 틈을 비집고 나올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이겼다면 23%
청일전쟁 때의 중국은 그냥 청나라 왕조였고, 앞서 말한 '공산권 중국'은 1949년 이후 얘기다. 그래서 청이 이겼다 해도 공산화로 곧장 이어지는 통로는 없다. 청이 이겼어도 조선은 청의 속방으로 다시 묶였을 뿐이고, 그 청마저 1911년 신해혁명으로 무너지니 조선은 다시 일본·러시아의 표적이 됐을 것이다. 결국 공산화를 가른 진짜 축은 청의 승패가 아니었다. 그래서 청이 이겼을 경우 공산화 가능성은 오히려 낮은 20~25% 정도다.
중요한 것은 소련·중국이라는 공산권과 육상으로 맞닿은 완충지대는 상당수가 공산화되거나 반으로 쪼개졌다. 몽골은 1924년 세계 두 번째 공산국가가 됐고, 북베트남과 북한이 그 뒤를 이었다.
일본이 공산화를 막은 확률은 적지 않다.
식민지배가 남긴 수탈·주권 상실·분단이라는 대가까지 저울에 올리면 "일본이 나았다"고 가볍게 말할 수는 없다.
만약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이겼다면 한반도 전체가 소련 궤도로 빨려 들어갈 확률이 65%였다. 그 경우 지금의 대한민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러시아를 꺾어 그 흐름을 끊은 것이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식민지배가 남긴 수탈·주권 상실·분단이라는 대가까지 저울에 올리면 "일본이 나았다"고 가볍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산화'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일본이 이긴 쪽이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보다는 덜 나쁜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른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 조선과 대한제국은 일본·러시아·청나라의 세력 경쟁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청일전쟁(1894~1895)의 결과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면서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였다. 일본은 이 조약을 통해 요동반도를 포함한 이권을 확보하였으나,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 반환을 강요당하였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일시적으로 약화되고 러시아의 입지가 강화되는 국면이 조성되었다.
명성황후는 일본의 내정 간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 노선을 추진하였다. 청일전쟁 직후 조선 정부는 친러 성향의 인물들을 기용하며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이려 하였다. 이에 일본은 명성황후를 친러 정책의 핵심으로 판단하고, 1895년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도한 일본군과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고 단발령 등을 단행하였으나, 국내외의 반발이 거세졌다.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경복궁을 탈출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하였다. 이후 약 1년 동안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친일 내각을 해체하고 친러 성향의 인물들을 등용하였다. 이 시기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러시아 군사 교관이 조선군을 훈련시키는 등 군사적 개입도 이루어졌다. 러·일 양국은 1896년 로바노프–야마가타 협정과 1898년 니시–로젠 협정 등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세력 균형을 모색하였으나, 만주와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충돌은 해소되지 않았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은 개전 직후 한반도에 군대를 상륙시키고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여 사실상 군사적 통제권을 확보하였다. 전쟁은 만주와 한반도, 황해와 동해에서 전개되었으며,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으로 종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우월한 권익을 인정하였고, 일본은 을사조약(1905)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뒤 1910년 한일병합을 단행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여 제정 러시아가 붕괴하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내전을 거쳐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성립하였다. 구 러시아 제국 영토 중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은 소련에 편입되었고, 외몽골은 1921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선포한 뒤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성립하여 세계 두 번째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핀란드는 1917년 독립을 선언하고 내전에서 백군이 승리하여 독립을 유지하였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역시 1918년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1940년 소련에 의해 점령·병합되었다.
청나라는 청일전쟁 패배 이후 내부 혼란이 심화되었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중국은 군벌 시대에 진입하여 중앙 권력이 약화되었으며, 중국 공산당이 전국을 통일하는 것은 1949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처럼 19세기 말~20세기 초 한반도는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 경쟁의 직접적인 대상이었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 구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에 속했던 여러 지역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수립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명성황후는 일본의 내정 간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 노선을 추진하였다. 청일전쟁 직후 조선 정부는 친러 성향의 인물들을 기용하며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이려 하였다. 이에 일본은 명성황후를 친러 정책의 핵심으로 판단하고, 1895년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도한 일본군과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고 단발령 등을 단행하였으나, 국내외의 반발이 거세졌다.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경복궁을 탈출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하였다. 이후 약 1년 동안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친일 내각을 해체하고 친러 성향의 인물들을 등용하였다. 이 시기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러시아 군사 교관이 조선군을 훈련시키는 등 군사적 개입도 이루어졌다. 러·일 양국은 1896년 로바노프–야마가타 협정과 1898년 니시–로젠 협정 등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세력 균형을 모색하였으나, 만주와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충돌은 해소되지 않았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은 개전 직후 한반도에 군대를 상륙시키고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여 사실상 군사적 통제권을 확보하였다. 전쟁은 만주와 한반도, 황해와 동해에서 전개되었으며,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으로 종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우월한 권익을 인정하였고, 일본은 을사조약(1905)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뒤 1910년 한일병합을 단행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여 제정 러시아가 붕괴하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내전을 거쳐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성립하였다. 구 러시아 제국 영토 중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은 소련에 편입되었고, 외몽골은 1921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선포한 뒤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성립하여 세계 두 번째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핀란드는 1917년 독립을 선언하고 내전에서 백군이 승리하여 독립을 유지하였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역시 1918년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1940년 소련에 의해 점령·병합되었다.
청나라는 청일전쟁 패배 이후 내부 혼란이 심화되었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중국은 군벌 시대에 진입하여 중앙 권력이 약화되었으며, 중국 공산당이 전국을 통일하는 것은 1949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처럼 19세기 말~20세기 초 한반도는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 경쟁의 직접적인 대상이었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 구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에 속했던 여러 지역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수립되는 사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