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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도 성희롱·성추행이 존재할까?

2026-08-31
천국에도 성희롱·성추행이 존재할까? — 기독교, 신화
천국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보통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을 상상한다. 그런데 조금 짓궂게 물어보자. 천국에도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그곳에도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것이 존재할까?

1. 음욕이 살아 있는 천국은 사실 지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욕은 본질적으로 결핍에서 나온다.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에 원하고, 얻으면 잠깐 만족하고, 다시 결핍이 찾아온다. 이 굶주림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그것도 죽음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반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고문이다.

게다가 예수님은 부활 후에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내가 없이 음욕만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데 끝없이 원하는 상태다.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영원히 지속되는 세계. 그것은 천국의 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2. 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가

이건 현대인이 처음 던진 질문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신학자들이 씨름해온 주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전 인간과 이후 인간을 구분했다. 그는 타락 전 인간에게도 성적 기능은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통제 불가능한 정욕에 지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비슷한 방향으로 갔다. 그는 부활한 몸은 완전해진 몸이며, 지금처럼 육체의 욕구에 끌려다니는 상태가 아니라고 이해했다. 결혼과 출산은 죽음이 있는 세계에서 필요한 구조인데, 죽음이 사라진 곳에서는 그 구조 자체가 불필요해진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현대 신학자들은 조심하자고 말한다. 성경이 부활 이후의 성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3. 성경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본다

첫째,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의 천사들과 같다"고 하셨다. 부활 이후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가 천사와 같고 지금과 다르다는 뜻이다.

둘째, 에덴을 보자.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게 중요하다. 부끄러움은 인간의 원래 상태가 아니라 타락 이후에 생긴 것이다. 즉 부끄러움은 죄가 만들어낸 부작용이다. 숨길 음욕이 없으면 부끄러울 것도 없다. 성추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셋째, 논리적으로 성별과 정욕은 분리된다. 남녀가 있다고 반드시 정욕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 어린아이들은 성욕 없이도 잘 논다. 다만 천국은 아이 상태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이라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이 네 가지를 종합하면, 천국에는 정욕을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정욕을 만들어내는 결핍 자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배 안 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이 없어도 고통이 없는 것과 같다.

4. 결론

그렇다면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천국에도 성희롱·성추행이 존재할까?

답은 명확하다. 존재할 수 없다. 이유는 그런 것을 하고 싶은 마음, 즉 타인을 욕망의 대상으로 소유하려는 결핍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부활 이후에는 죽음이 없다. 죽음이 없으면 대를 이을 필요도 없다.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면, 그 기능 자체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정리하면 성별은 남지만 정욕은 사라진다. 사랑은 남지만 소유욕은 사라진다. 친밀감은 남지만 성적 결핍은 사라진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남지만 죄로 이어지는 욕망은 사라진다.

성희롱이 금지된 곳이 아니라, 성희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를 잃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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