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정말 인도에서 불교를 배웠을까
'성 이사'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누가복음은 열두 살 예수가 성전에 나타난 뒤, 서른 즈음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 약 18년 동안 침묵한다. 1894년 러시아 출신 여행가 니콜라스 노토비치는 이 빈칸에 놀라운 답을 내놓았다. 예수가 '이사(Issa)'라는 이름으로 인도에 가서 베다와 불교를 배웠다는 것이다. 매혹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이사전』을 들여다볼수록 이 문헌은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보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졌는가를 더 많이 보여준다.
1. 불교를 배웠다는데, 설교는 복음서다
『이사전』의 이사는 여러 해 동안 베다와 불교 경전을 공부한다. 그런데 그가 전하는 핵심은 사성제도, 무아도, 연기도 아니다. 그는 아버지 되신 한 분 하나님을 선포하고, 우상을 버리라 하며, 종교 특권층과 충돌하다 목숨을 위협받고 피신한다. 불교 수행자의 전기라기보다 복음서의 예수를 인도라는 무대에 옮겨놓은 구조다. 게다가 여러 해 공개적으로 가르쳤다는 주장의 규모에 비해, 그의 제자 집단이나 계승 공동체, 인도 쪽의 독립 기록 같은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은 사라질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 불가능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주장에 비해 흔적이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점은 설명되어야 한다.
2. 동양을 꿈꾸던 시대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인도 종교와 불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었고, 신지학처럼 동서양 종교의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보려는 흐름도 퍼지고 있었다. 비어 있는 18년, 불교와 닮아 보이는 예수의 윤리, 그리고 이 둘을 이어줄 고대 티베트 문서. 『이사전』은 그런 환경에서 큰 호응을 얻을 만한 이야기였다. 물론 시대 분위기가 노토비치의 창작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이야기가 왜 그토록 쉽게 퍼질 수 있었는지는 설명해준다.
3. 아무도 검증하지 못한 원본
진위를 가를 것은 이야기의 매력이 아니라 원본이다. 노토비치는 헤미스 수도원에서 문헌을 접했다고 했지만, 티베트어를 직접 읽은 것이 아니라 통역을 거쳐 받아 적은 메모를 나중에 자신이 순서대로 재배열했다. 당대 동양학자 막스 뮐러는 곧바로 강한 의문을 제기했고, 1895년 직접 헤미스를 찾은 J. 아치볼드 더글라스에게 수도원 책임자는 노토비치의 체류와 그 문헌을 모두 부인했다. 이후 비슷한 문서를 보았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연구자가 재료와 필사체, 언어와 연대를 독립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원본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은 "문서가 있다"가 아니라 "노토비치가 보았다고 주장했다"는 것뿐이다.
4. 닮음은 전설 없이도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와 붓다는 왜 닮아 보일까. 예수의 자비와 재물에 대한 경계,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은 이사야와 아모스로 이어지는 히브리 예언자 전통 안에서 상당 부분 설명된다. 고대 인도와 지중해 사이의 교류를 생각하면 사상의 간접적 이동 가능성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과 "예수가 직접 인도에 가서 불교를 배웠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이고, 후자에는 후자만의 증거가 필요하다. 그 증거로 제시된 것이 『이사전』이었지만, 따라가 보면 남는 것은 예수의 18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침묵을 어떻게 이야기로 채워왔는가다. 전설을 걷어낸 뒤에야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예수와 붓다는 어디에서 닮고, 어디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지는가.
필요하면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것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나타나곤 한다. 20세기 중반 UFO 목격담이 쏟아지고 외계인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자, 에리히 폰 데니켄은 고대 유적을 외계인의 흔적으로 읽어냈고, 제카리아 시친은 수메르 점토판을 해독했다며 아눈나키 이야기를 내놓았다. 1990년대에는 파충류 외계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렙틸리언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원문과 증거를 요구했을 때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노토비치의 『이사전』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동양의 지혜에 목말라하던 19세기 유럽에, 예수가 인도에서 배웠다는 고대 문서가 나타났다. 패턴은 늘 비슷하다. 먼저 욕망이 있고, 채워지지 않은 빈칸이 있고, 그 빈칸을 정확히 메워줄 '고대 문서'나 '해독'이 등장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원본은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가 지나치게 우리가 원하던 모양을 하고 있을 때, 먼저 물어야 한다. 이것은 발견된 것인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누가복음은 열두 살 예수가 성전에 나타난 뒤, 서른 즈음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 약 18년 동안 침묵한다. 1894년 러시아 출신 여행가 니콜라스 노토비치는 이 빈칸에 놀라운 답을 내놓았다. 예수가 '이사(Issa)'라는 이름으로 인도에 가서 베다와 불교를 배웠다는 것이다. 매혹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이사전』을 들여다볼수록 이 문헌은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보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졌는가를 더 많이 보여준다.
1. 불교를 배웠다는데, 설교는 복음서다
『이사전』의 이사는 여러 해 동안 베다와 불교 경전을 공부한다. 그런데 그가 전하는 핵심은 사성제도, 무아도, 연기도 아니다. 그는 아버지 되신 한 분 하나님을 선포하고, 우상을 버리라 하며, 종교 특권층과 충돌하다 목숨을 위협받고 피신한다. 불교 수행자의 전기라기보다 복음서의 예수를 인도라는 무대에 옮겨놓은 구조다. 게다가 여러 해 공개적으로 가르쳤다는 주장의 규모에 비해, 그의 제자 집단이나 계승 공동체, 인도 쪽의 독립 기록 같은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은 사라질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 불가능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주장에 비해 흔적이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점은 설명되어야 한다.
2. 동양을 꿈꾸던 시대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인도 종교와 불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었고, 신지학처럼 동서양 종교의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보려는 흐름도 퍼지고 있었다. 비어 있는 18년, 불교와 닮아 보이는 예수의 윤리, 그리고 이 둘을 이어줄 고대 티베트 문서. 『이사전』은 그런 환경에서 큰 호응을 얻을 만한 이야기였다. 물론 시대 분위기가 노토비치의 창작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이야기가 왜 그토록 쉽게 퍼질 수 있었는지는 설명해준다.
3. 아무도 검증하지 못한 원본
진위를 가를 것은 이야기의 매력이 아니라 원본이다. 노토비치는 헤미스 수도원에서 문헌을 접했다고 했지만, 티베트어를 직접 읽은 것이 아니라 통역을 거쳐 받아 적은 메모를 나중에 자신이 순서대로 재배열했다. 당대 동양학자 막스 뮐러는 곧바로 강한 의문을 제기했고, 1895년 직접 헤미스를 찾은 J. 아치볼드 더글라스에게 수도원 책임자는 노토비치의 체류와 그 문헌을 모두 부인했다. 이후 비슷한 문서를 보았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연구자가 재료와 필사체, 언어와 연대를 독립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원본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은 "문서가 있다"가 아니라 "노토비치가 보았다고 주장했다"는 것뿐이다.
4. 닮음은 전설 없이도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와 붓다는 왜 닮아 보일까. 예수의 자비와 재물에 대한 경계,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은 이사야와 아모스로 이어지는 히브리 예언자 전통 안에서 상당 부분 설명된다. 고대 인도와 지중해 사이의 교류를 생각하면 사상의 간접적 이동 가능성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과 "예수가 직접 인도에 가서 불교를 배웠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이고, 후자에는 후자만의 증거가 필요하다. 그 증거로 제시된 것이 『이사전』이었지만, 따라가 보면 남는 것은 예수의 18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침묵을 어떻게 이야기로 채워왔는가다. 전설을 걷어낸 뒤에야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예수와 붓다는 어디에서 닮고, 어디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지는가.
필요하면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것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나타나곤 한다. 20세기 중반 UFO 목격담이 쏟아지고 외계인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자, 에리히 폰 데니켄은 고대 유적을 외계인의 흔적으로 읽어냈고, 제카리아 시친은 수메르 점토판을 해독했다며 아눈나키 이야기를 내놓았다. 1990년대에는 파충류 외계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렙틸리언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원문과 증거를 요구했을 때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노토비치의 『이사전』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동양의 지혜에 목말라하던 19세기 유럽에, 예수가 인도에서 배웠다는 고대 문서가 나타났다. 패턴은 늘 비슷하다. 먼저 욕망이 있고, 채워지지 않은 빈칸이 있고, 그 빈칸을 정확히 메워줄 '고대 문서'나 '해독'이 등장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원본은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가 지나치게 우리가 원하던 모양을 하고 있을 때, 먼저 물어야 한다. 이것은 발견된 것인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예수의 사라진 생애와 ‘성 이사’ 이야기
1. 예수의 12세부터 약 30세까지는 정경 복음서에 상세한 기록이 없다
정경 복음서 가운데 예수의 어린 시절을 가장 자세히 기록하는 것은 누가복음이다.
누가복음 2장은 열두 살 예수가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의 유월절에 올라갔다가 성전에 남아 율법 교사들과 대화했다고 기록한다. 부모가 예수를 찾았을 때 예수는 자신이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이 사건 이후 누가복음은 예수가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했다고 기록하고, 이어 예수가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요약한다.
그다음 구체적인 장면에서 예수는 이미 성인이다.
누가복음 3장 23절은 예수가 사역을 시작할 당시 “약 삼십 세”였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정경 복음서는 예수의 열두 살부터 약 서른 살까지의 생활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가 그 기간에 실종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음서가 그 기간을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 정경 복음서에서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청년 예수의 모습은 제한적이다
마가복음 6장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놀라면서 그를 자신들이 알고 있던 인물로 취급한다.
그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를 ‘목수’ 또는 ‘장인’을 뜻하는 tekton으로 부른다.
따라서 예수가 공생애 이전에 나사렛 지역에서 장인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보는 것은 정경 복음서와 잘 맞는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 몇 살부터 일했는지, 어느 지역의 건설 현장에서 일했는지 등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요셉은 예수의 열두 살 성전 사건 이후 정경 복음서의 성인 예수 이야기에서 사실상 사라진다.
이 때문에 요셉이 예수의 청년기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자주 제기되지만, 성경은 요셉의 사망 시기와 원인을 기록하지 않는다.
따라서 “요셉이 일찍 죽었고 예수가 장남으로 가족을 부양했다”는 재구성은 가능한 역사적 추론이지 확인된 사건은 아니다.
3. 예수의 형제들은 처음부터 예수를 믿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가복음 6장 3절은 예수의 형제로 야고보, 요셉 또는 요세, 유다, 시몬을 언급하고 자매들도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기독교 전통에 따라 이들을 마리아가 낳은 친동생으로 보는 해석, 요셉의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로 보는 해석, 가까운 친족으로 보는 해석 등이 존재한다.
요한복음 7장 5절은 예수의 형제들이 당시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예수의 가족이 어린 시절부터 예수를 공개적인 기적 행위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수 사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9절에서 야고보를 “주의 형제”라고 부른다. 야고보는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로 등장한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은 부활한 예수가 야고보에게 나타났다는 전승을 기록한다.
고린도전서 9장 5절에는 “주의 형제들”이 다른 사도들과 함께 언급되므로 예수의 형제 가운데 복수의 인물이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 참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네 형제 가운데 정확히 몇 명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는 자료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4.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의 행동은 흥미롭지만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을 증명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2장에서 혼인잔치의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예수는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답하지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마리아가 예수에게 특별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을 예수의 표적의 시작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이 장면만으로 마리아가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정경 복음서에는 예수가 어린 시절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이 없다.
5. 예수와 세례 요한이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웠다는 증거도 없다
누가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을 친족 관계로 묘사한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서술을 따르면 예수와 세례 요한의 가족 사이에는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린 시절 함께 자랐다거나 친구처럼 가까웠다는 기록은 없다.
요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를 두고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라는 사람 자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문맥상 예수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마태복음 11장에서는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 예수가 정말 오실 그 사람인지 질문한다.
따라서 정경 자료가 보여주는 관계는 단순한 ‘어린 시절 친구’ 관계보다 복잡하다.
6. 성경이 예수의 청년기를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성경 자체가 설명하지 않는다
“성령이 의도적으로 예수의 18년을 감추었다”는 주장은 신학적 해석으로는 가능하지만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복음서 자체는 예수의 모든 행적을 기록하려는 완전한 전기를 표방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은 예수가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들도 행했다고 말하고, 기록된 내용의 목적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는 데 둔다.
요한복음 21장 25절 역시 예수가 행한 모든 일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복음서가 예수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생략했다는 사실 자체는 복음서의 선택적인 서술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생략에 특별한 비밀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외경은 이 빈칸을 어떻게 채웠는가
7. 후대의 그리스도교 문헌들은 정경이 침묵한 어린 예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문헌이 『도마 유년복음』이다.
이 문헌은 신약성경의 『도마복음』과 다른 문헌이며 대체로 2세기 계통의 유년기 외경으로 취급된다.
이 문헌에는 어린 예수가 진흙으로 새를 만들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 교사들을 놀라게 하는 이야기, 어린 예수의 초자연적인 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야기 등이 등장한다.
일부 이야기는 현대 독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거칠다. 어린 예수에게 해를 끼친 아이가 죽거나 사람들에게 심판이 내려지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이 문헌 역시 마지막에는 누가복음의 열두 살 성전 사건으로 연결된다.
즉 정경이 남긴 어린 시절의 공백을 후대 사람들이 이야기로 채운 사례이다.
8. 다른 유년기 외경들은 이야기를 더욱 확대했다
『야고보 원복음』은 예수의 청년기보다 마리아의 출생과 성장, 요셉과의 관계 등에 집중한다.
여기에서는 요셉이 이미 자녀가 있는 연장자로 묘사된다. 이것은 예수의 형제들을 요셉의 이전 자녀로 이해하는 후대 전통과 연결된다.
『아랍어 유년복음』과 『위(僞)마태복음』 등에서는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 이야기가 더욱 확대된다.
동물들이 예수에게 복종하고, 나무가 기적을 일으키며, 우상이 무너지는 등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 문헌들은 정경 복음서보다 후대에 작성되었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의 어린 시절을 직접 증언하는 1세기 자료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여기서 하나의 패턴이 나타난다.
예수 시대에 가까운 자료일수록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적고, 시대가 멀어질수록 그 빈칸을 채우는 이야기는 많아진다.
예수의 인도 여행설
9. 예수가 청년기에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정경이나 초기 기독교 자료에 없다
예수가 열두 살 이후 인도로 이동하여 불교를 공부했다는 기록은 신약성경에 없다.
초기 교부 문헌에도 이를 확인해주는 독립적인 1세기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중요한 계기는 19세기 니콜라스 노토비치의 책이다.
노토비치는 1894년 『예수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를 출판하여 예수가 ‘이사(Issa)’라는 이름으로 인도에서 생활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노토비치는 이 내용을 자신이 창작한 이야기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라다크의 헤미스 수도원에서 이사에 관한 티베트 문헌을 접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헤미스 수도원에 예수의 인도 생활을 기록한 고대 문서가 존재했다”가 아니라 “노토비치가 그런 문서를 접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된 위조·성스러운 전승 연구에서도 노토비치의 책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원본을 번역했다고 주장한 문헌’의 대표적인 사례로 다루어진다.
10. 『성 이사의 생애』 속 이사는 단순히 불교를 배우러 간 학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노토비치가 소개한 이야기에서 이사는 인도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인도의 종교적 전통을 접하고 공부하며 이후 불교와 관련된 지역에서도 배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사는 단순한 학생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사회적·종교적 차별을 비판하며 종교 지도층과 충돌한다.
따라서 『이사전』 자체의 줄거리를 따른다고 해도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를 배우고 돌아왔다”는 한 문장만으로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사는 배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11.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불교를 배웠다는 이사의 핵심 설교가 불교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사전』의 이사는 오랫동안 인도 종교와 불교를 배운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설교 중심에는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개념인 사성제, 팔정도, 무아, 연기, 열반 등이 놓여 있지 않다.
오히려 한 분 하나님, 창조주, 아버지, 우상숭배에 대한 비판,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등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사전』의 이사는 불교 교리를 전파하는 불교 선교자로 묘사되지 않는다.
다른 종교를 공부한다고 그 종교로 개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이 불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의 증거로 『이사전』을 사용하려 할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불교를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설정에 비해 이사의 핵심 신학은 유대교적 유일신 신앙 및 복음서의 예수와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12. ‘우상을 반대하면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것 자체는 결정적인 모순이 아니다
예수 시대 전후의 불교를 현대의 불상 중심 이미지로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초기 불교미술에는 불탑, 법륜, 보리수, 빈 왕좌, 발자국 등 상징적인 표현이 존재했다.
인간 모습의 붓다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대해서는 학술적 논쟁이 있지만, 대체로 기원후 1세기 전후에서 쿠샨 시대의 간다라와 마투라 미술이 중요한 전환점으로 다루어진다.
따라서 1세기의 사람이 불교를 공부하면서 동시에 특정 형태의 우상숭배를 비판했다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상 여부가 아니라 『이사전』에서 불교 고유의 교리가 얼마나 실제로 나타나는가이다.
예수와 불교의 실제 관계
13. 예수와 불교 사이에는 비교할 수 있는 윤리적 유사성이 존재한다
예수의 가르침과 불교 문헌 사이에서 비교되는 주제들이 있다.
자비, 원한에 대한 대응, 물질적 집착에 대한 경계, 인간 내면의 중요성, 자기 성찰, 가난과 욕망에 대한 문제의식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 학계에서도 신약성경과 불교 문헌의 유사성 자체는 연구 대상이다.
2025년 『Oxford Handbook of the Bible in India』의 관련 연구도 불교 문헌과 신약성경 사이에 주목할 만한 텍스트적 유사성이 있고 고대 인도와 서아시아 사이의 역사적·상업적 접촉도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불교가 예수나 신약성경에 영향을 주었다고 결론 내릴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닮았다’와 ‘배웠다’는 구분해야 한다.
A와 B가 비슷하다는 것은 관찰이다.
A가 B에게서 배웠다는 것은 역사적 인과관계에 대한 주장이다.
후자를 주장하려면 전자를 넘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14. 예수의 가르침은 1세기 유대교의 전통만으로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 이해,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 율법과 예언서의 인용, 하나님 나라, 죄와 용서, 부활과 심판 등의 개념은 유대교적 세계관 안에 위치한다.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에 대한 관심 역시 히브리 성경의 예언자 전통에 이미 존재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 가운데 일부가 불교와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인도 여행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고대 인도와 지중해 세계 사이에 교역과 문화적 접촉이 있었으므로 사상이 간접적으로 이동했을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화적 접촉 가능성과 예수 개인의 인도 여행은 별개의 주장이다.
『성 이사』 문헌의 검증 문제
15. 노토비치의 주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검증 가능한 원본이다
노토비치는 자신이 헤미스 수도원에서 문헌을 직접 발견하여 티베트어를 완전히 번역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의 설명에는 수도원의 문헌, 라마의 낭독, 통역, 자신의 메모와 정리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출판된 『이사전』과 가정된 최초 자료 사이에는 여러 전달 단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현대 연구자가 직접 가져와 재료, 필사체, 언어, 연대, 문헌 계보를 검사할 수 있는 문제의 고대 원본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역사 문헌으로서 매우 큰 한계이다.
16. 노토비치의 주장은 발표 직후부터 검증을 요구받았다
노토비치의 이야기가 알려진 뒤 산스크리트 및 인도학 연구자로 유명했던 막스 뮐러는 그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J. 아치볼드 더글라스가 헤미스 수도원을 직접 방문하여 조사했고, 그가 만난 수도원 책임자는 노토비치가 주장한 체류와 문제의 이사 문헌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 때문에 노토비치의 주장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빙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후대에는 헤미스에서 이사 관련 전승이나 문헌을 확인했다는 다른 주장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후대 주장 역시 현재 독립적인 연구자들이 문제의 고대 원본을 직접 검사할 수 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따라서 현재의 핵심 문제는 단순하다.
주장은 존재하지만 검증 가능한 고대 원본이 없다.
17. 인도에서 장기간 공개적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에 비해 독립적인 흔적도 부족하다
『이사전』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면 이사는 인도를 잠깐 방문한 사람이 아니다.
여러 해 동안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종교 지도층과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활동한다.
그러나 그 활동을 독립적으로 확인해주는 동시대 인도 문헌, 명확한 제자 계보, 초기 ‘이사 공동체’ 등의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간의 공개 활동이라는 큰 주장에 비해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점은 그 주장의 역사적 신뢰도를 평가할 때 중요한 문제이다.
18. 『이사전』의 서사 구조는 정경 복음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사전』의 이사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종교적 특권과 차별을 비판한다.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한다.
위협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결국 서쪽으로 돌아와 활동한다.
이러한 서사에는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와 비교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그러나 유사성 자체만으로 노토비치가 복음서를 베껴 이야기를 창작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것을 입증하려면 문장 단위의 의존 관계, 시대착오적인 표현, 노토비치가 사용한 자료, 초고와 편집 과정 등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따라서 “노토비치가 의도적으로 위조했다”는 결론과 “노토비치의 이야기를 뒷받침할 고대 원본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결론은 구분해야 한다.
후자는 현재 자료로 말할 수 있다.
전자는 더 강한 증거를 요구한다.
노토비치와 19세기라는 배경
19. 『성 이사』는 19세기 말의 동양 종교에 대한 서구의 관심 속에서 등장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스크리트 문헌 연구와 불교 연구가 발전했고 인도 종교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커졌다.
동서양 종교의 공통된 근원을 찾으려는 사상도 등장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은 ‘예수가 인도에서 동양의 지혜를 배웠다’는 이야기가 관심을 얻기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시대적 분위기가 어떤 이야기에 유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이야기의 저자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시대적 배경은 문헌이 왜 관심을 얻었는지를 설명하는 자료이지 위조 행위의 직접 증거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확인되는 것
20. 예수의 ‘잃어버린 18년’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
정경 복음서는 예수의 열두 살 이후 약 서른 살까지를 상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나사렛 사람들은 성인 예수를 자신들이 알고 있던 장인으로 기억한다.
예수에게는 형제와 자매가 있었으며 형제들은 처음에는 그를 믿지 않았다고 기록된다.
야고보를 비롯한 예수의 형제들 가운데 일부는 이후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 참여했다.
마리아가 가나에서 예수에게 특별한 신뢰를 보이지만 이것이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세례 요한의 가족과 예수의 가족이 친족 관계였다는 누가복음의 기록은 있지만 예수와 요한이 어린 시절부터 친밀했다는 기록은 없다.
후대 외경들은 정경이 남긴 어린 시절의 공백을 수많은 기적 이야기로 채웠다.
그러나 예수의 12세부터 약 30세까지를 신뢰성 있게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1세기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예수가 그 기간에 인도에 가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주장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세기 노토비치의 『성 이사』 이야기이다.
노토비치가 주장한 고대 티베트 원본은 현재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의 주장은 당대에 현지 조사를 통해 반박되었다.
예수와 불교의 가르침 사이에는 비교할 만한 유사성이 있지만, 현대 연구에서도 그 유사성을 예수가 직접 불교를 배웠다는 증거로 확정하지 않는다. 최근 Oxford의 비교 연구 역시 유사성과 고대 교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직접적인 불교 영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아직 없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현재 자료로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예수의 청년기에는 역사자료의 공백이 존재한다.
그 공백이 예수의 인도 체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수와 불교 사이의 유사성은 실제 비교연구의 대상이지만, 유사성이 곧 직접적인 학습 관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성 이사』는 예수의 인도 체류를 입증하는 검증된 고대 문헌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노토비치가 의도적으로 문서를 위조하여 이야기를 창작했다는 것까지 확정하려면 현재 논의한 자료보다 더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결국 예수의 12세부터 약 30세까지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동시대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빈칸을 도마 유년복음과 여러 외경은 기적으로 채웠고, 훨씬 후대에는 인도와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채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빈칸을 채운다는 사실과 그 이야기가 실제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1. 예수의 12세부터 약 30세까지는 정경 복음서에 상세한 기록이 없다
정경 복음서 가운데 예수의 어린 시절을 가장 자세히 기록하는 것은 누가복음이다.
누가복음 2장은 열두 살 예수가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의 유월절에 올라갔다가 성전에 남아 율법 교사들과 대화했다고 기록한다. 부모가 예수를 찾았을 때 예수는 자신이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이 사건 이후 누가복음은 예수가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했다고 기록하고, 이어 예수가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요약한다.
그다음 구체적인 장면에서 예수는 이미 성인이다.
누가복음 3장 23절은 예수가 사역을 시작할 당시 “약 삼십 세”였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정경 복음서는 예수의 열두 살부터 약 서른 살까지의 생활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가 그 기간에 실종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음서가 그 기간을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 정경 복음서에서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청년 예수의 모습은 제한적이다
마가복음 6장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놀라면서 그를 자신들이 알고 있던 인물로 취급한다.
그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를 ‘목수’ 또는 ‘장인’을 뜻하는 tekton으로 부른다.
따라서 예수가 공생애 이전에 나사렛 지역에서 장인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보는 것은 정경 복음서와 잘 맞는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 몇 살부터 일했는지, 어느 지역의 건설 현장에서 일했는지 등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요셉은 예수의 열두 살 성전 사건 이후 정경 복음서의 성인 예수 이야기에서 사실상 사라진다.
이 때문에 요셉이 예수의 청년기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자주 제기되지만, 성경은 요셉의 사망 시기와 원인을 기록하지 않는다.
따라서 “요셉이 일찍 죽었고 예수가 장남으로 가족을 부양했다”는 재구성은 가능한 역사적 추론이지 확인된 사건은 아니다.
3. 예수의 형제들은 처음부터 예수를 믿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가복음 6장 3절은 예수의 형제로 야고보, 요셉 또는 요세, 유다, 시몬을 언급하고 자매들도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기독교 전통에 따라 이들을 마리아가 낳은 친동생으로 보는 해석, 요셉의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로 보는 해석, 가까운 친족으로 보는 해석 등이 존재한다.
요한복음 7장 5절은 예수의 형제들이 당시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예수의 가족이 어린 시절부터 예수를 공개적인 기적 행위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수 사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9절에서 야고보를 “주의 형제”라고 부른다. 야고보는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로 등장한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은 부활한 예수가 야고보에게 나타났다는 전승을 기록한다.
고린도전서 9장 5절에는 “주의 형제들”이 다른 사도들과 함께 언급되므로 예수의 형제 가운데 복수의 인물이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 참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네 형제 가운데 정확히 몇 명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는 자료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4.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의 행동은 흥미롭지만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을 증명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2장에서 혼인잔치의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예수는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답하지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마리아가 예수에게 특별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을 예수의 표적의 시작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이 장면만으로 마리아가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정경 복음서에는 예수가 어린 시절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이 없다.
5. 예수와 세례 요한이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웠다는 증거도 없다
누가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을 친족 관계로 묘사한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서술을 따르면 예수와 세례 요한의 가족 사이에는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린 시절 함께 자랐다거나 친구처럼 가까웠다는 기록은 없다.
요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를 두고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라는 사람 자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문맥상 예수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마태복음 11장에서는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 예수가 정말 오실 그 사람인지 질문한다.
따라서 정경 자료가 보여주는 관계는 단순한 ‘어린 시절 친구’ 관계보다 복잡하다.
6. 성경이 예수의 청년기를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성경 자체가 설명하지 않는다
“성령이 의도적으로 예수의 18년을 감추었다”는 주장은 신학적 해석으로는 가능하지만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복음서 자체는 예수의 모든 행적을 기록하려는 완전한 전기를 표방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은 예수가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들도 행했다고 말하고, 기록된 내용의 목적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는 데 둔다.
요한복음 21장 25절 역시 예수가 행한 모든 일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복음서가 예수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생략했다는 사실 자체는 복음서의 선택적인 서술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생략에 특별한 비밀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외경은 이 빈칸을 어떻게 채웠는가
7. 후대의 그리스도교 문헌들은 정경이 침묵한 어린 예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문헌이 『도마 유년복음』이다.
이 문헌은 신약성경의 『도마복음』과 다른 문헌이며 대체로 2세기 계통의 유년기 외경으로 취급된다.
이 문헌에는 어린 예수가 진흙으로 새를 만들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 교사들을 놀라게 하는 이야기, 어린 예수의 초자연적인 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야기 등이 등장한다.
일부 이야기는 현대 독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거칠다. 어린 예수에게 해를 끼친 아이가 죽거나 사람들에게 심판이 내려지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이 문헌 역시 마지막에는 누가복음의 열두 살 성전 사건으로 연결된다.
즉 정경이 남긴 어린 시절의 공백을 후대 사람들이 이야기로 채운 사례이다.
8. 다른 유년기 외경들은 이야기를 더욱 확대했다
『야고보 원복음』은 예수의 청년기보다 마리아의 출생과 성장, 요셉과의 관계 등에 집중한다.
여기에서는 요셉이 이미 자녀가 있는 연장자로 묘사된다. 이것은 예수의 형제들을 요셉의 이전 자녀로 이해하는 후대 전통과 연결된다.
『아랍어 유년복음』과 『위(僞)마태복음』 등에서는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 이야기가 더욱 확대된다.
동물들이 예수에게 복종하고, 나무가 기적을 일으키며, 우상이 무너지는 등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 문헌들은 정경 복음서보다 후대에 작성되었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의 어린 시절을 직접 증언하는 1세기 자료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여기서 하나의 패턴이 나타난다.
예수 시대에 가까운 자료일수록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적고, 시대가 멀어질수록 그 빈칸을 채우는 이야기는 많아진다.
예수의 인도 여행설
9. 예수가 청년기에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정경이나 초기 기독교 자료에 없다
예수가 열두 살 이후 인도로 이동하여 불교를 공부했다는 기록은 신약성경에 없다.
초기 교부 문헌에도 이를 확인해주는 독립적인 1세기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중요한 계기는 19세기 니콜라스 노토비치의 책이다.
노토비치는 1894년 『예수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를 출판하여 예수가 ‘이사(Issa)’라는 이름으로 인도에서 생활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노토비치는 이 내용을 자신이 창작한 이야기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라다크의 헤미스 수도원에서 이사에 관한 티베트 문헌을 접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헤미스 수도원에 예수의 인도 생활을 기록한 고대 문서가 존재했다”가 아니라 “노토비치가 그런 문서를 접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된 위조·성스러운 전승 연구에서도 노토비치의 책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원본을 번역했다고 주장한 문헌’의 대표적인 사례로 다루어진다.
10. 『성 이사의 생애』 속 이사는 단순히 불교를 배우러 간 학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노토비치가 소개한 이야기에서 이사는 인도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인도의 종교적 전통을 접하고 공부하며 이후 불교와 관련된 지역에서도 배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사는 단순한 학생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사회적·종교적 차별을 비판하며 종교 지도층과 충돌한다.
따라서 『이사전』 자체의 줄거리를 따른다고 해도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를 배우고 돌아왔다”는 한 문장만으로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사는 배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11.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불교를 배웠다는 이사의 핵심 설교가 불교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사전』의 이사는 오랫동안 인도 종교와 불교를 배운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설교 중심에는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개념인 사성제, 팔정도, 무아, 연기, 열반 등이 놓여 있지 않다.
오히려 한 분 하나님, 창조주, 아버지, 우상숭배에 대한 비판,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등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사전』의 이사는 불교 교리를 전파하는 불교 선교자로 묘사되지 않는다.
다른 종교를 공부한다고 그 종교로 개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이 불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의 증거로 『이사전』을 사용하려 할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불교를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설정에 비해 이사의 핵심 신학은 유대교적 유일신 신앙 및 복음서의 예수와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12. ‘우상을 반대하면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것 자체는 결정적인 모순이 아니다
예수 시대 전후의 불교를 현대의 불상 중심 이미지로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초기 불교미술에는 불탑, 법륜, 보리수, 빈 왕좌, 발자국 등 상징적인 표현이 존재했다.
인간 모습의 붓다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대해서는 학술적 논쟁이 있지만, 대체로 기원후 1세기 전후에서 쿠샨 시대의 간다라와 마투라 미술이 중요한 전환점으로 다루어진다.
따라서 1세기의 사람이 불교를 공부하면서 동시에 특정 형태의 우상숭배를 비판했다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상 여부가 아니라 『이사전』에서 불교 고유의 교리가 얼마나 실제로 나타나는가이다.
예수와 불교의 실제 관계
13. 예수와 불교 사이에는 비교할 수 있는 윤리적 유사성이 존재한다
예수의 가르침과 불교 문헌 사이에서 비교되는 주제들이 있다.
자비, 원한에 대한 대응, 물질적 집착에 대한 경계, 인간 내면의 중요성, 자기 성찰, 가난과 욕망에 대한 문제의식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 학계에서도 신약성경과 불교 문헌의 유사성 자체는 연구 대상이다.
2025년 『Oxford Handbook of the Bible in India』의 관련 연구도 불교 문헌과 신약성경 사이에 주목할 만한 텍스트적 유사성이 있고 고대 인도와 서아시아 사이의 역사적·상업적 접촉도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불교가 예수나 신약성경에 영향을 주었다고 결론 내릴 설득력 있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닮았다’와 ‘배웠다’는 구분해야 한다.
A와 B가 비슷하다는 것은 관찰이다.
A가 B에게서 배웠다는 것은 역사적 인과관계에 대한 주장이다.
후자를 주장하려면 전자를 넘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14. 예수의 가르침은 1세기 유대교의 전통만으로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 이해,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 율법과 예언서의 인용, 하나님 나라, 죄와 용서, 부활과 심판 등의 개념은 유대교적 세계관 안에 위치한다.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에 대한 관심 역시 히브리 성경의 예언자 전통에 이미 존재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 가운데 일부가 불교와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인도 여행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고대 인도와 지중해 세계 사이에 교역과 문화적 접촉이 있었으므로 사상이 간접적으로 이동했을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화적 접촉 가능성과 예수 개인의 인도 여행은 별개의 주장이다.
『성 이사』 문헌의 검증 문제
15. 노토비치의 주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검증 가능한 원본이다
노토비치는 자신이 헤미스 수도원에서 문헌을 직접 발견하여 티베트어를 완전히 번역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의 설명에는 수도원의 문헌, 라마의 낭독, 통역, 자신의 메모와 정리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출판된 『이사전』과 가정된 최초 자료 사이에는 여러 전달 단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현대 연구자가 직접 가져와 재료, 필사체, 언어, 연대, 문헌 계보를 검사할 수 있는 문제의 고대 원본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역사 문헌으로서 매우 큰 한계이다.
16. 노토비치의 주장은 발표 직후부터 검증을 요구받았다
노토비치의 이야기가 알려진 뒤 산스크리트 및 인도학 연구자로 유명했던 막스 뮐러는 그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J. 아치볼드 더글라스가 헤미스 수도원을 직접 방문하여 조사했고, 그가 만난 수도원 책임자는 노토비치가 주장한 체류와 문제의 이사 문헌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 때문에 노토비치의 주장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빙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후대에는 헤미스에서 이사 관련 전승이나 문헌을 확인했다는 다른 주장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후대 주장 역시 현재 독립적인 연구자들이 문제의 고대 원본을 직접 검사할 수 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따라서 현재의 핵심 문제는 단순하다.
주장은 존재하지만 검증 가능한 고대 원본이 없다.
17. 인도에서 장기간 공개적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에 비해 독립적인 흔적도 부족하다
『이사전』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면 이사는 인도를 잠깐 방문한 사람이 아니다.
여러 해 동안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종교 지도층과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활동한다.
그러나 그 활동을 독립적으로 확인해주는 동시대 인도 문헌, 명확한 제자 계보, 초기 ‘이사 공동체’ 등의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간의 공개 활동이라는 큰 주장에 비해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점은 그 주장의 역사적 신뢰도를 평가할 때 중요한 문제이다.
18. 『이사전』의 서사 구조는 정경 복음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사전』의 이사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종교적 특권과 차별을 비판한다.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한다.
위협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결국 서쪽으로 돌아와 활동한다.
이러한 서사에는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와 비교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그러나 유사성 자체만으로 노토비치가 복음서를 베껴 이야기를 창작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것을 입증하려면 문장 단위의 의존 관계, 시대착오적인 표현, 노토비치가 사용한 자료, 초고와 편집 과정 등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따라서 “노토비치가 의도적으로 위조했다”는 결론과 “노토비치의 이야기를 뒷받침할 고대 원본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결론은 구분해야 한다.
후자는 현재 자료로 말할 수 있다.
전자는 더 강한 증거를 요구한다.
노토비치와 19세기라는 배경
19. 『성 이사』는 19세기 말의 동양 종교에 대한 서구의 관심 속에서 등장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스크리트 문헌 연구와 불교 연구가 발전했고 인도 종교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커졌다.
동서양 종교의 공통된 근원을 찾으려는 사상도 등장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은 ‘예수가 인도에서 동양의 지혜를 배웠다’는 이야기가 관심을 얻기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시대적 분위기가 어떤 이야기에 유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이야기의 저자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시대적 배경은 문헌이 왜 관심을 얻었는지를 설명하는 자료이지 위조 행위의 직접 증거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확인되는 것
20. 예수의 ‘잃어버린 18년’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
정경 복음서는 예수의 열두 살 이후 약 서른 살까지를 상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나사렛 사람들은 성인 예수를 자신들이 알고 있던 장인으로 기억한다.
예수에게는 형제와 자매가 있었으며 형제들은 처음에는 그를 믿지 않았다고 기록된다.
야고보를 비롯한 예수의 형제들 가운데 일부는 이후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 참여했다.
마리아가 가나에서 예수에게 특별한 신뢰를 보이지만 이것이 예수의 어린 시절 기적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세례 요한의 가족과 예수의 가족이 친족 관계였다는 누가복음의 기록은 있지만 예수와 요한이 어린 시절부터 친밀했다는 기록은 없다.
후대 외경들은 정경이 남긴 어린 시절의 공백을 수많은 기적 이야기로 채웠다.
그러나 예수의 12세부터 약 30세까지를 신뢰성 있게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1세기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예수가 그 기간에 인도에 가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주장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세기 노토비치의 『성 이사』 이야기이다.
노토비치가 주장한 고대 티베트 원본은 현재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의 주장은 당대에 현지 조사를 통해 반박되었다.
예수와 불교의 가르침 사이에는 비교할 만한 유사성이 있지만, 현대 연구에서도 그 유사성을 예수가 직접 불교를 배웠다는 증거로 확정하지 않는다. 최근 Oxford의 비교 연구 역시 유사성과 고대 교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직접적인 불교 영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아직 없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현재 자료로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예수의 청년기에는 역사자료의 공백이 존재한다.
그 공백이 예수의 인도 체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수와 불교 사이의 유사성은 실제 비교연구의 대상이지만, 유사성이 곧 직접적인 학습 관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성 이사』는 예수의 인도 체류를 입증하는 검증된 고대 문헌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노토비치가 의도적으로 문서를 위조하여 이야기를 창작했다는 것까지 확정하려면 현재 논의한 자료보다 더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결국 예수의 12세부터 약 30세까지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동시대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빈칸을 도마 유년복음과 여러 외경은 기적으로 채웠고, 훨씬 후대에는 인도와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채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빈칸을 채운다는 사실과 그 이야기가 실제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