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게 마녀사냥의 누명을 씌운 일제시대
2026-04-27
중세 말, 흑사병과 굶주림이 겹치면서 마녀 개념이 교회 교리 안으로 들어온다.
특히 1487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 마녀의 망치가 20쇄 넘게 팔리며 공포를 전국으로 퍼뜨렸다. 책의 내용은 황당 그 잡채다.
"농사망하고 병걸리고 가축 죽는것은 마녀 때문이다."
"마녀라는 소문만 있어도 잡아서 고문하라."
"부인하면 의심하고 자백하면 유죄확정을 하라."
"증거 없어도 마녀, 부인해도 마녀, 자백해도 마녀”
마녀사냥이 가장 심했던 건 중세가 아니라 16~17세기 근대 초반이다.
소빙하기로 농사를 망치고 신교와 구교가 서로를 비난했다.
마녀사냥을 주도한 건 종교 법정이 아니라 지방의 세속적인 지방법정이었다.
중세의 가톨릭 교회는 마법을 악마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봤다.
교황청이 마녀 책을 공식으로 잘못된 책이라고 선언했다.
마녀가 진짜 존재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된 믿음이라고 가르치며 대규모 박해를 막았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보여주려고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낙인찍고, 근대에서 일어난 범죄를 중세 탓으로 돌렸다.
"우리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게쩌는데, 중세는 미신적이고 야만적이다."
극적인 대비를 위해서 수백만명이 죽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5만명 내외로 죽었다. (그래도 많긴 많다)
일본도 계몽주의자들의 서양 역사·개념을 번역해서 조선에 이렇게 교육했다.
“중세 = 암흑기”
“교회 = 미신과 억압”
“마녀사냥 = 중세 대표 사건”
뻥을 잘하면 과학적이고 계몽적인건가?
계몽주의자들의 기록 조작과 프레임 형성
[기록 1: 암흑시대(Dark Ages) 용어의 고착]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중세를 합리성이 결여된 '기독교의 승리와 야만주의의 시대'로 규정했다. 이는 근대 지식인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이전 시대를 암흑으로 낙인찍은 명백한 사상적 조작이다.
[기록 2: 마녀사냥 통계의 왜곡]
18세기 법학자 고트프리트 톰라지우스는 마녀사냥 희생자를 수백만 명으로 부풀려 기록했다. 이는 중세를 '광기의 시대'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적인 수치 조작이었다. 현대 사학자들은 실제 희생자를 4만~6만 명 수준으로 확정했으며, 이 중 대부분은 근대 초 세속 법정의 판결이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일제가 주입한 식민사학 속의 중세관
[일제의 왜곡: 정체성론과 봉건제 결여]
일제 어용학자들은 한국에는 유럽식 '봉건 중세'가 없었으므로 스스로 근대화할 능력이 없다는 '정체성론'을 주입했다. 이때 이들이 인용한 중세 모델은 계몽주의자들이 왜곡한 '부정적이고 정체된 암흑기'로서의 유럽 중세였다.
[조작 경로: 일본 수입 서양사]
메이지 시대 일본은 제국주의 정당화를 위해 서구의 계몽주의 사관을 그대로 직수입했다. '중세=봉건=낙후'라는 공식을 조선에 이식하여, 조선의 사회 구조를 전근대적 야만으로 비하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우리가 배운 "중세는 암흑기"라는 상식은 사실 일제가 주입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부산물이다.
역사적 기록이 증명하는 실제 중세의 방어 기제
[증거 1: 카논 에피스코피 (Canon Episcopi, 10세기)]
중세 교회법의 기초가 된 이 기록은 "마법을 부린다는 주장은 악마가 만든 환각에 불과하며, 이를 실제로 믿는 자는 신앙이 없는 자"라고 명시했다. 즉, 중세는 마녀를 잡는 시대가 아니라 마녀가 있다는 믿음을 단죄하던 시대였다.
[증거 2: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무죄 판결 (17세기)]
마녀사냥이 광풍을 일으키던 근대 초기, 오히려 보수적인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마녀라고 기소된 자들의 자백은 고문에 의한 허위"라며 무죄를 선고하고 사형을 중단시켰다. 광기를 제어한 것은 근대의 '이성'이 아니라 중세부터 이어진 '교회법적 절차'였다.
결론: 계몽주의자들은 근대의 광기를 중세의 유산으로 둔갑시켰고, 일제는 그 왜곡된 프레임을 가져와 우리 역사를 비하하는 논리로 써먹었다. 사장님이 읽으시는 현재의 통념은 조작된 역사의 잔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