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던 한국과 중국을 싸움붙인 '언론'
1992년 한중 수교 무렵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한국에게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었고, 중국에게 한국은 앞선 경험과 기술을 가진 파트너였다. 사람과 물건이 빠르게 오갔고, 두 나라는 서로가 필요했다.
내가 과거 중국 베이징 호텔에 머무르면서 TV를 켰는데 정말 황당한 것을 보았다. 일기예보 지도에 한국이 없다. 일본 하나만 점으로 찍혔다. 그래서 생각했다. "한국은 중국에서 모르는구나"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녁 정규 뉴스에서 '동방신기'가 중국에 방문한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었다. 아.. 이런.. 그렇다.. 원래 중국은 한국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갈등이 하나씩 쌓였다. 동북공정, 천안함, 사드, 코로나. 사건은 저마다 달랐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이 더 큰 싸움을 만들었다.
동북공정으로 싸움붙여볼까?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 체계 안에서 해석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중국이 우리 역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문제로 보도했다. 그러자 중국에서는 그 반발을 "한국의 민족주의적 과민반응"으로 뿌렸다.
한쪽은 "중국이 역사를 훔친다", 다른 쪽은 "한국이 우리 역사를 부정한다". 서로의 행동에 의미를 덧씌우기 시작하자, 역사 논쟁은 토론이 아니라 어느새 국가 대 국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했다.
천안함으로 싸움붙여볼까?
2010년 천안함은 본래 북한의 공격 여부와 중국의 대응이 핵심인 사건이었다. 중국의 소극적 태도 뒤에는 북한 정권의 생존, 한반도 안정, 미군 영향력 견제 같은 복잡한 계산이 얽혀 있었다.
하지만 국민에게 전달된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한국에선 "중국은 북한 편", 중국에선 "한국은 미국 편에 서서 우리를 압박한다". 복잡한 외교가 순식간에 "우리 편이냐 저쪽 편이냐"의 문제로 납작해졌다.
사드로 싸움붙여볼까?
2016년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배치됐다. 한국에선 "북한을 막는 방어체계", 중국에선 "중국 안보를 침해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같은 무기를 두고 두 나라가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론은 상대의 가장 강한 반응을 골라 전했다. 한국에선 중국의 경제보복과 한한령이 부각됐고, 중국에선 사드가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이 강조됐다. 한중 언론 보도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뉴스의 번역·편집·프레이밍이 상대국에 대한 국민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불난 집에 시너를 끼얹는 유튜버
과거에는 언론이 해석하면 국민이 그 뉴스를 보는 구조였다. 지금은 다르다. 유튜버도 해석자가 됐다.
유튜버는 사건을 그대로 전할 필요가 없다. 제목 하나로 방향을 정한다. "중국이 한국을 무시했다." 긴 외교 자료보다 짧고 강한 주장 하나가 훨씬 잘 소비되고, 자극적일수록 더 잘 퍼진다.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수가 오르면 유튜버에겐 수익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의 갈등은 끝없이 재생산되는 고리가 된다.
결국 범인은 '사건'이 아니었다
동북공정도, 천안함도, 사드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사건을 "저 나라가 우리를 공격했다", "저 나라는 원래 우리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로 계속 번역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번 만들어진 프레임은 다음 사건의 해석까지 결정한다. 중국이 뭘 하면 "역시 중국은 저렇다", 한국이 뭘 하면 "역시 한국은 미국 편이다". 그 순간부터 상대의 행동은 사실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해석된다.
알고리즘은 이 고리를 더 조인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이야기와 닮은 콘텐츠를 계속 보게 되고, 그래서 한국인은 중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중국인은 한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본다. 서로의 평범한 모습은 사라지고, 가장 성난 모습만 남는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나라 국민이 서서히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
그래서 진짜 범인은 '조회수'
한중관계의 진짜 문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이다. 사건이 아니라, 클릭수와 구독자와 돈을 위해서 사건을 적대감으로 번역하는 프레임이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만든 주체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과거엔 언론이 중심이었고, 지금은 거기에 유튜버와 SNS가 가세했다.
내가 과거 중국 베이징 호텔에 머무르면서 TV를 켰는데 정말 황당한 것을 보았다. 일기예보 지도에 한국이 없다. 일본 하나만 점으로 찍혔다. 그래서 생각했다. "한국은 중국에서 모르는구나"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녁 정규 뉴스에서 '동방신기'가 중국에 방문한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었다. 아.. 이런.. 그렇다.. 원래 중국은 한국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갈등이 하나씩 쌓였다. 동북공정, 천안함, 사드, 코로나. 사건은 저마다 달랐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이 더 큰 싸움을 만들었다.
동북공정으로 싸움붙여볼까?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 체계 안에서 해석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중국이 우리 역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문제로 보도했다. 그러자 중국에서는 그 반발을 "한국의 민족주의적 과민반응"으로 뿌렸다.
한쪽은 "중국이 역사를 훔친다", 다른 쪽은 "한국이 우리 역사를 부정한다". 서로의 행동에 의미를 덧씌우기 시작하자, 역사 논쟁은 토론이 아니라 어느새 국가 대 국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했다.
천안함으로 싸움붙여볼까?
2010년 천안함은 본래 북한의 공격 여부와 중국의 대응이 핵심인 사건이었다. 중국의 소극적 태도 뒤에는 북한 정권의 생존, 한반도 안정, 미군 영향력 견제 같은 복잡한 계산이 얽혀 있었다.
하지만 국민에게 전달된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한국에선 "중국은 북한 편", 중국에선 "한국은 미국 편에 서서 우리를 압박한다". 복잡한 외교가 순식간에 "우리 편이냐 저쪽 편이냐"의 문제로 납작해졌다.
사드로 싸움붙여볼까?
2016년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배치됐다. 한국에선 "북한을 막는 방어체계", 중국에선 "중국 안보를 침해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같은 무기를 두고 두 나라가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론은 상대의 가장 강한 반응을 골라 전했다. 한국에선 중국의 경제보복과 한한령이 부각됐고, 중국에선 사드가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이 강조됐다. 한중 언론 보도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뉴스의 번역·편집·프레이밍이 상대국에 대한 국민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불난 집에 시너를 끼얹는 유튜버
과거에는 언론이 해석하면 국민이 그 뉴스를 보는 구조였다. 지금은 다르다. 유튜버도 해석자가 됐다.
유튜버는 사건을 그대로 전할 필요가 없다. 제목 하나로 방향을 정한다. "중국이 한국을 무시했다." 긴 외교 자료보다 짧고 강한 주장 하나가 훨씬 잘 소비되고, 자극적일수록 더 잘 퍼진다.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수가 오르면 유튜버에겐 수익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의 갈등은 끝없이 재생산되는 고리가 된다.
결국 범인은 '사건'이 아니었다
동북공정도, 천안함도, 사드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사건을 "저 나라가 우리를 공격했다", "저 나라는 원래 우리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로 계속 번역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번 만들어진 프레임은 다음 사건의 해석까지 결정한다. 중국이 뭘 하면 "역시 중국은 저렇다", 한국이 뭘 하면 "역시 한국은 미국 편이다". 그 순간부터 상대의 행동은 사실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해석된다.
알고리즘은 이 고리를 더 조인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이야기와 닮은 콘텐츠를 계속 보게 되고, 그래서 한국인은 중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중국인은 한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본다. 서로의 평범한 모습은 사라지고, 가장 성난 모습만 남는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나라 국민이 서서히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
그래서 진짜 범인은 '조회수'
한중관계의 진짜 문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이다. 사건이 아니라, 클릭수와 구독자와 돈을 위해서 사건을 적대감으로 번역하는 프레임이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만든 주체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과거엔 언론이 중심이었고, 지금은 거기에 유튜버와 SNS가 가세했다.
잘 지내던 한국과 중국을 싸움 붙인 '언론'
1992년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했을 때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한국에게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었고, 중국에게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가까운 이웃이자 기술과 경험을 가진 파트너였다. 국가기록원도 당시 한중 수교의 의미를 "중국과의 호혜평등한 선린협력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기여"로 설명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한국을 가까운 나라로 느끼게 만든 의외의 주역이 하나 더 있었다. 한류다.
## 1990년대 — 중국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기 시작하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1997년 CCTV에서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는 4.2%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1억 5천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한국 정부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베이징의 라디오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소개됐고, 2000년 2월 H.O.T.의 베이징 공연은 한류 열풍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류'라는 말이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한류는 단순히 드라마와 노래만 팔아준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중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과 함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한중관계는 한국은 상품과 기술을, 중국은 시장과 기회를 주고받으며, 중국 젊은 세대가 한국 문화에 끌리는 상당히 좋은 구조였다.
## 2000년 — 첫 번째 충돌, 마늘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2000년 한중 마늘 분쟁이 터졌다.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에 보복했고, 분쟁은 재협상을 거쳐 2003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의 갈등은 지금과 성격이 달랐다. 농산물과 통상 문제였고, 국민 전체가 서로를 싫어하게 되는 역사·민족 갈등으로 번지지도 않았다. 싸우고 협상하고 다시 거래하는, 전형적인 무역분쟁에 가까웠다.
## 2002~2004년 — 동북공정
첫 번째 큰 감정적 균열은 동북공정이었다. 중국은 2002년 동북공정을 공식 출범시켜 고구려·발해·고조선·백두산·간도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2003~2004년이다. 관영 광명일보가 고구려를 중국 동북지역 소수민족 정권으로 보는 주장을 실었고, 2004년에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 고대사 내용이 삭제되고 신화통신 등이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보도하면서 한국 사회의 반발이 크게 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와 사건의 해석을 구분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자국의 역사 연구, 동북지역의 역사·민족 문제라는 틀에서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중국이 우리 역사를 빼앗는다", "역사전쟁이 시작됐다"는 프레임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당시 한국 정치권과 언론은 동북공정을 학술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요구했다. 그러자 중국에서는 다시 한국의 반발을 민족주의적 과민반응으로 보는 시각이 커졌다. 한 사건이 양국 국민에게 서로 다른 이야기로 전달되는 구조가, 여기서 처음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 그런데 한중관계는 계속 좋아졌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동북공정이 있었다고 한중관계가 곧바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문화 교류는 계속 확대됐다. 1998년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 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고,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됐다.
2000년대 중국의 급성장은 한국 기업에게 거대한 기회였다. 중국은 한국 기업의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 됐고, 한국은 중국 산업화에 필요한 중간재와 기술을 공급했다. 한중관계는 역사 문제 하나로 무너질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 2008년 — 오히려 '전략적 협력동반자'가 되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은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경제뿐 아니라 북핵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시 외교부가 설명한 중국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한국에 기회를 주는 '세계의 공장 겸 거대한 시장'으로 인식됐고, 양국은 환경·에너지·통신·금융·물류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그러니까 "2004년 동북공정 → 곧바로 반중"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중국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중국과 경제적으로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 2010년 — 천안함
그리고 북한이라는 변수가 다시 등장한다.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해 46명이 사망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책임을 결론냈고, 유엔 안보리는 그해 7월 천안함 공격을 규탄했다. 다만 안보리 문서는 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도 북한의 부인 역시 함께 기록했고, 중국은 북한의 책임을 명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때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은 결국 북한 편"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한 친북 문제가 아니었다.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 한반도 불안정, 미군 영향력 확대 등 여러 전략적 계산이 동시에 작용했다. 당시 한국 정부 역시 중국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아, 천안함을 계기로 이른바 '중국 역할론'이 다시 강조됐다. 그러나 국민에게 전달되는 외교는 복잡하지 않았다. 한국에선 "중국은 북한 편", 중국에선 "한국은 미국 편"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 2012~2015년 — 다시 가까워지다
재미있는 것은 천안함 이후에도 한중관계가 계속 발전했다는 점이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단독 방문했고, 한국 언론은 이를 한중관계의 밀접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크게 다뤘다. 2015년에는 한중 FTA가 정식 서명됐다. 당시 정부는 중국을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대상국으로 설명하며 FTA를 경제협력의 새 틀로 평가했다.
여론도 이를 뒷받침했다. 2015년 9~11월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서 중국 호감도가 5점대 중반까지 올랐고, 11월에는 5.54점으로 당시 조사 기간 최고치를 찍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동북공정도 천안함도 있었지만, 2015년까지 한국인의 중국 호감은 상당히 회복돼 있었다. 그러니 한중관계가 망가진 원인을 2004년 동북공정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 2016년 — 사드
그리고 판이 크게 바뀐다. 2016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자 한미 양국은 7월 8일 사드 배치를 공식 결정했다. 한국에서 사드는 "북한 미사일을 막는 방어체계"였고, 중국에서는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침해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였다. 같은 무기를 두고 두 나라가 전혀 다른 것을 보았고, 여기서 한중관계가 정면충돌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한국 관광과 문화콘텐츠에 대한 비공식 제한이 이어졌다. 한 연구는 중국이 2016년부터 한류 콘텐츠를 제한하고 2017년 3월 한국행 관광상품을 금지하면서, 중국 소비자의 한국에 대한 이성적·감성적 이미지가 모두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인의 중국 인식도 급락했다. 2015년 11월 5.54점이던 아산정책연구원 호감도는 사드 갈등 이후 크게 떨어졌고, 2017년에는 시진핑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함께 곤두박질쳤다. 퓨리서치센터 역시 한국인의 대중 부정 인식이 2017년 경제 보복과 함께 크게 상승했다고 분석한다.
## 그런데 사드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망친 것'은 아니다
사드를 한중관계 악화의 유일한 원인으로 보는 것도 지나치다. 사드 이전에도 역사 갈등, 북한 문제, 경제 경쟁, 문화 갈등, 환경 문제 등이 이미 쌓이고 있었다. 사드는 이 갈등들을 한꺼번에 정치·안보 문제로 묶어버린 사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의 대응 방식이 한국인의 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한국에서는 "북한 미사일을 막겠다고 방어체계를 놨는데 중국이 경제보복을 한다"는 인식이, 중국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에 참여해 중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 2017년 — 싸움은 멈췄지만 상처는 남았다
2017년 10월 한중 양국은 관계 개선에 합의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고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 궤도로 회복하기로 했으며,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의 입장과 우려를 확인했다. 외교적으로는 싸움을 멈추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국민 감정은 그렇게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계속 남았다. "중국은 경제보복을 하는 나라", "한국은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에 참여하는 나라". 이런 이미지가 서로의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 2018~2019년 — 경제적으로는 계속 얽혀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발생한다. 국민 감정은 나빠졌지만 경제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한중 FTA는 계속 작동했고,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핵심 교역 상대였다. KIEP는 한중 FTA가 양국 경제적 유대의 실질적·상징적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 감정은 멀어지는데 경제는 계속 가까웠다. 이것이 한중관계의 특이한 특징이다.
## 2020년 — 코로나19
그리고 코로나19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중국에 대한 감정은 안보와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생활과 건강의 문제로 들어온 것이다. 퓨 조사에서는 2020년 코로나 이후 여러 나라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 인식이 크게 상승했고, 한국도 그 영향을 받았다. 한국의 대중 부정 인식은 2017년 사드 때 크게 오른 뒤 2020년 코로나를 계기로 다시 상승했다. 이제 '중국'이라는 단어에는 공산당·북한·사드·경제보복에 더해 코로나까지 붙었다.
## 그런데 한류는 죽지 않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생긴다. 정치적 감정은 나빠졌는데 한류는 계속 커졌다. 2020년 코로나로 이동은 막혔지만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통해 한류는 오히려 세계로 확산됐고, 한국국제교류재단 보고서는 세계 한류 팬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에서도 한국 드라마·예능·K-pop은 젊은 세대에게 계속 소비됐고, 한류 팬덤은 한국 제품 구매와 방문 의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됐다.
즉,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감정과 한국 문화에 대한 취향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한국을 싫다면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중국 정부에 불만이면서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의 감정은 국가 단위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 2020년대 — 언론의 시대에서 유튜브의 시대로
여기서 갈등을 키우는 방식 자체가 바뀐다. 과거에는 '신문 → 방송 → 국민'이었고, 인터넷 시대에는 '신문·방송 → 포털·커뮤니티 → 국민'이었다. 지금은 '언론 → 유튜브 → SNS·커뮤니티 → 알고리즘 → 다시 유튜브'라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제 기자만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유튜버도 해석한다. 제목 하나면 된다. "중국이 한국을 무시했다!", "한국이 중국에 굴복했다!" 복잡한 외교 문제를 10분짜리 영상이나 30초짜리 쇼츠로 압축하며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남긴다. 유튜브는 한류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지만, 반대로 갈등 콘텐츠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문제는 분노도 콘텐츠가 된다는 것이다. 조회수가 나오면 구독자가 늘고, 구독자가 늘면 광고와 후원 수익이 발생하고, 수익이 생기면 다시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 유인이 생긴다. 그러면 갈등은 사건이 끝나도 콘텐츠로 계속 살아남는다.
## 중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서도 관영매체와 인터넷 여론이 결합해 상대국의 자극적인 행동을 확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논란이다. 한국에서는 판정 불만이 커졌고, 중국에서는 한국 선수와 한국에 대한 반발이 확산됐다. YTN의 당시 현지 보도에서도 환구시보가 한국 선수들의 실격을 한국 측 책임으로 해석하고 중국 네티즌이 그 논리를 따라가는 현상이 소개됐다. BTS RM이 한국 선수에게 남긴 응원 표시까지 중국 인터넷에서 '중국 모욕' 논란으로 번졌다.
이렇게 되면 평범한 한국인과 평범한 중국인은 서로 만날 기회가 없는데도 상대를 싫어하게 된다. 서로가 보는 것은 상대국 국민 전체가 아니라, 상대방 인터넷에서 가장 화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2024년 — 중국은 싫지만 중요한 나라
2024년 EAI 조사는 이 관계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상은 63.9%, 긍정적 인상은 19.6%였다. 그런데 "한중관계가 한국에게 중요하다"는 응답은 무려 85.9%였다.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부정적 인상의 이유도 흥미롭다.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중국의 환경 문제 영향(44.2%), 한국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39.4%), 사드 보복 등 강압적 행동(38.3%)이었다. 여기서 동북공정은 더 이상 가장 큰 이유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불만이 역사에서 안보로, 경제보복으로, 환경과 존중의 문제로 옮겨간 것이다.
## 2025년 — 다시 한류가 문을 두드리다
2025년부터 또 재미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와 K-pop에 대한 제한이 조금씩 완화되는 움직임이 보인 것이다. 2025년 4월에는 2016년 이후 9년 만에 전원 한국 국적으로 구성된 K-pop 그룹의 중국 내 단독 상업공연이 정식 허가됐고, 중국 외교부도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개방적 태도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것을 한한령의 완전한 종료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2025년에도 일부 한국 공연이 취소·연기됐고, 중국 정부는 '한한령'이라는 명문화된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완전한 해제도 완전한 차단도 아닌, 점진적 완화 단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 결국 무엇이 한국과 중국을 멀어지게 했는가?
처음에는 한류가 두 나라를 가까워지게 했다. 드라마에서 음악으로, 음식으로, 관광과 상품과 사람으로 — 문화가 경제와 사람을 연결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역사 갈등, 경제 경쟁, 북한 문제, 천안함, 사드, 경제보복, 코로나, 환경·문화 원류 갈등, 그리고 미중 경쟁.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의 해석이 달랐다. 한국은 중국의 행동을 "한국을 무시한다", "압박한다", "북한 편을 든다"로 읽었고, 중국은 한국의 행동을 "미국을 따라 중국을 견제한다", "중국 안보를 무시한다", "중국을 적대한다"로 읽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서로의 해석이 충돌했다. 그리고 언론은 그중 가장 강한 말을 골라 국민에게 보여줬고, 인터넷은 그것을 퍼뜨렸고, 유튜브는 다시 영상으로 만들었고,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오래 보는 콘텐츠를 계속 추천했다. 그렇게 분노가 조회수가 되기 시작했다.
## 그래서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동북공정 하나가 범인은 아니다. 천안함도, 사드도, 코로나도 아니다. 각각은 실제 사건이었고, 각각 한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대응한 사건이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 단계,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발생했다.
같은 사건을 "우리에게 위협이다"라고 해석하면 분노가 생긴다. 상대가 그것을 다시 "저들은 우리를 적대한다"라고 해석하면 반발이 나온다. 그 반발을 상대방 언론이 "중국이 또 한국을 공격했다" 혹은 "한국이 또 중국을 도발했다"라고 보도한다. 그러면 다음 사건에서는 이미 상대를 의심하며 시작한다. 이것이 해석의 악순환이다.
## 1992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답이 보인다
1992년에는 서로가 필요했다. 1997년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1억 5천만 명이 봤고, 2000년 H.O.T. 공연에 중국 청소년이 열광했다. 2008년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가 됐고, 2014년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단독 방문했으며, 2015년 한중 FTA를 체결했다. 그런데 2016년 사드를 거치며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고, 2020년 코로나를 거치며 국민 감정은 더 악화됐다. 그럼에도 2025년 중국 젊은 세대는 여전히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한국 가수의 중국 공연이 다시 허가되기 시작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좋아했다가 싫어하고, 싫어하면서도 필요로 하고,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도 문화를 소비한다.
## 결국 싸움을 키운 것은 '사건'보다 '프레임'이다
사건은 한 번 발생하고 끝난다. 하지만 프레임은 계속 살아남는다. "중국은 원래 한국을 싫어한다", "한국은 원래 중국을 무시한다" 같은 프레임이 한번 만들어지면, 다음 사건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기존 프레임의 증거가 된다. 중국이 뭘 하면 "역시 중국은 저렇다", 한국이 뭘 하면 "역시 한국은 미국 편이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의 평범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은 중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중국인은 한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보고, 그것을 상대국 국민 전체의 모습이라 여긴다.
과거에는 언론이 이 역할을 맡았고, 인터넷 시대에는 네티즌이, 지금은 유튜버와 SNS까지 가세했다. 그리고 여기에 강력한 보상이 하나 붙었다. 조회수다. 조회수가 오르면 구독자가 늘고, 구독자가 늘면 돈이 된다. 그러니 갈등은 끝내는 것보다 계속 만드는 편이 콘텐츠 사업자에게 유리한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한중관계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먼저 돌을 던졌느냐만 볼 것이 아니라, **누가 그 돌을 계속 집어 들게 만들었느냐**를 봐야 한다.
1992년에는 한류가 두 나라를 가까워지게 했고, 2020년대에는 미디어가 서로의 가장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두 나라를 멀어지게 했다. 한류는 서로의 좋은 모습을, 갈등 콘텐츠는 서로의 화난 모습을 보여줬다. 어쩌면 한중관계의 역사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가까워지고 화난 모습만 보여주면 멀어지는, 아주 단순한 인간관계의 원리를 국가 차원에서 반복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선택지는 남아 있다. 한국과 중국이 다시 친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의 국익과 안보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상대국 국민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방식의 해석은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싸울 문제는 정부끼리 싸우고, 문화와 사람까지 적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것. 그것이 1992년부터 지금까지의 한중관계를 길게 놓고 봤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했을 때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한국에게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었고, 중국에게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가까운 이웃이자 기술과 경험을 가진 파트너였다. 국가기록원도 당시 한중 수교의 의미를 "중국과의 호혜평등한 선린협력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기여"로 설명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한국을 가까운 나라로 느끼게 만든 의외의 주역이 하나 더 있었다. 한류다.
## 1990년대 — 중국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기 시작하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1997년 CCTV에서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는 4.2%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1억 5천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한국 정부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베이징의 라디오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소개됐고, 2000년 2월 H.O.T.의 베이징 공연은 한류 열풍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류'라는 말이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한류는 단순히 드라마와 노래만 팔아준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중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과 함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한중관계는 한국은 상품과 기술을, 중국은 시장과 기회를 주고받으며, 중국 젊은 세대가 한국 문화에 끌리는 상당히 좋은 구조였다.
## 2000년 — 첫 번째 충돌, 마늘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2000년 한중 마늘 분쟁이 터졌다.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에 보복했고, 분쟁은 재협상을 거쳐 2003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의 갈등은 지금과 성격이 달랐다. 농산물과 통상 문제였고, 국민 전체가 서로를 싫어하게 되는 역사·민족 갈등으로 번지지도 않았다. 싸우고 협상하고 다시 거래하는, 전형적인 무역분쟁에 가까웠다.
## 2002~2004년 — 동북공정
첫 번째 큰 감정적 균열은 동북공정이었다. 중국은 2002년 동북공정을 공식 출범시켜 고구려·발해·고조선·백두산·간도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2003~2004년이다. 관영 광명일보가 고구려를 중국 동북지역 소수민족 정권으로 보는 주장을 실었고, 2004년에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 고대사 내용이 삭제되고 신화통신 등이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보도하면서 한국 사회의 반발이 크게 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와 사건의 해석을 구분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자국의 역사 연구, 동북지역의 역사·민족 문제라는 틀에서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중국이 우리 역사를 빼앗는다", "역사전쟁이 시작됐다"는 프레임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당시 한국 정치권과 언론은 동북공정을 학술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요구했다. 그러자 중국에서는 다시 한국의 반발을 민족주의적 과민반응으로 보는 시각이 커졌다. 한 사건이 양국 국민에게 서로 다른 이야기로 전달되는 구조가, 여기서 처음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 그런데 한중관계는 계속 좋아졌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동북공정이 있었다고 한중관계가 곧바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문화 교류는 계속 확대됐다. 1998년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 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고,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됐다.
2000년대 중국의 급성장은 한국 기업에게 거대한 기회였다. 중국은 한국 기업의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 됐고, 한국은 중국 산업화에 필요한 중간재와 기술을 공급했다. 한중관계는 역사 문제 하나로 무너질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 2008년 — 오히려 '전략적 협력동반자'가 되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은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경제뿐 아니라 북핵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시 외교부가 설명한 중국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한국에 기회를 주는 '세계의 공장 겸 거대한 시장'으로 인식됐고, 양국은 환경·에너지·통신·금융·물류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그러니까 "2004년 동북공정 → 곧바로 반중"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중국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중국과 경제적으로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 2010년 — 천안함
그리고 북한이라는 변수가 다시 등장한다.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해 46명이 사망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책임을 결론냈고, 유엔 안보리는 그해 7월 천안함 공격을 규탄했다. 다만 안보리 문서는 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도 북한의 부인 역시 함께 기록했고, 중국은 북한의 책임을 명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때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은 결국 북한 편"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한 친북 문제가 아니었다.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 한반도 불안정, 미군 영향력 확대 등 여러 전략적 계산이 동시에 작용했다. 당시 한국 정부 역시 중국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아, 천안함을 계기로 이른바 '중국 역할론'이 다시 강조됐다. 그러나 국민에게 전달되는 외교는 복잡하지 않았다. 한국에선 "중국은 북한 편", 중국에선 "한국은 미국 편"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 2012~2015년 — 다시 가까워지다
재미있는 것은 천안함 이후에도 한중관계가 계속 발전했다는 점이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단독 방문했고, 한국 언론은 이를 한중관계의 밀접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크게 다뤘다. 2015년에는 한중 FTA가 정식 서명됐다. 당시 정부는 중국을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대상국으로 설명하며 FTA를 경제협력의 새 틀로 평가했다.
여론도 이를 뒷받침했다. 2015년 9~11월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서 중국 호감도가 5점대 중반까지 올랐고, 11월에는 5.54점으로 당시 조사 기간 최고치를 찍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동북공정도 천안함도 있었지만, 2015년까지 한국인의 중국 호감은 상당히 회복돼 있었다. 그러니 한중관계가 망가진 원인을 2004년 동북공정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 2016년 — 사드
그리고 판이 크게 바뀐다. 2016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자 한미 양국은 7월 8일 사드 배치를 공식 결정했다. 한국에서 사드는 "북한 미사일을 막는 방어체계"였고, 중국에서는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침해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였다. 같은 무기를 두고 두 나라가 전혀 다른 것을 보았고, 여기서 한중관계가 정면충돌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한국 관광과 문화콘텐츠에 대한 비공식 제한이 이어졌다. 한 연구는 중국이 2016년부터 한류 콘텐츠를 제한하고 2017년 3월 한국행 관광상품을 금지하면서, 중국 소비자의 한국에 대한 이성적·감성적 이미지가 모두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인의 중국 인식도 급락했다. 2015년 11월 5.54점이던 아산정책연구원 호감도는 사드 갈등 이후 크게 떨어졌고, 2017년에는 시진핑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함께 곤두박질쳤다. 퓨리서치센터 역시 한국인의 대중 부정 인식이 2017년 경제 보복과 함께 크게 상승했다고 분석한다.
## 그런데 사드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망친 것'은 아니다
사드를 한중관계 악화의 유일한 원인으로 보는 것도 지나치다. 사드 이전에도 역사 갈등, 북한 문제, 경제 경쟁, 문화 갈등, 환경 문제 등이 이미 쌓이고 있었다. 사드는 이 갈등들을 한꺼번에 정치·안보 문제로 묶어버린 사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의 대응 방식이 한국인의 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한국에서는 "북한 미사일을 막겠다고 방어체계를 놨는데 중국이 경제보복을 한다"는 인식이, 중국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에 참여해 중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 2017년 — 싸움은 멈췄지만 상처는 남았다
2017년 10월 한중 양국은 관계 개선에 합의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고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 궤도로 회복하기로 했으며,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의 입장과 우려를 확인했다. 외교적으로는 싸움을 멈추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국민 감정은 그렇게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계속 남았다. "중국은 경제보복을 하는 나라", "한국은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에 참여하는 나라". 이런 이미지가 서로의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 2018~2019년 — 경제적으로는 계속 얽혀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발생한다. 국민 감정은 나빠졌지만 경제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한중 FTA는 계속 작동했고,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핵심 교역 상대였다. KIEP는 한중 FTA가 양국 경제적 유대의 실질적·상징적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 감정은 멀어지는데 경제는 계속 가까웠다. 이것이 한중관계의 특이한 특징이다.
## 2020년 — 코로나19
그리고 코로나19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중국에 대한 감정은 안보와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생활과 건강의 문제로 들어온 것이다. 퓨 조사에서는 2020년 코로나 이후 여러 나라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 인식이 크게 상승했고, 한국도 그 영향을 받았다. 한국의 대중 부정 인식은 2017년 사드 때 크게 오른 뒤 2020년 코로나를 계기로 다시 상승했다. 이제 '중국'이라는 단어에는 공산당·북한·사드·경제보복에 더해 코로나까지 붙었다.
## 그런데 한류는 죽지 않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생긴다. 정치적 감정은 나빠졌는데 한류는 계속 커졌다. 2020년 코로나로 이동은 막혔지만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통해 한류는 오히려 세계로 확산됐고, 한국국제교류재단 보고서는 세계 한류 팬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에서도 한국 드라마·예능·K-pop은 젊은 세대에게 계속 소비됐고, 한류 팬덤은 한국 제품 구매와 방문 의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됐다.
즉,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감정과 한국 문화에 대한 취향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한국을 싫다면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중국 정부에 불만이면서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의 감정은 국가 단위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 2020년대 — 언론의 시대에서 유튜브의 시대로
여기서 갈등을 키우는 방식 자체가 바뀐다. 과거에는 '신문 → 방송 → 국민'이었고, 인터넷 시대에는 '신문·방송 → 포털·커뮤니티 → 국민'이었다. 지금은 '언론 → 유튜브 → SNS·커뮤니티 → 알고리즘 → 다시 유튜브'라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제 기자만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유튜버도 해석한다. 제목 하나면 된다. "중국이 한국을 무시했다!", "한국이 중국에 굴복했다!" 복잡한 외교 문제를 10분짜리 영상이나 30초짜리 쇼츠로 압축하며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남긴다. 유튜브는 한류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지만, 반대로 갈등 콘텐츠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문제는 분노도 콘텐츠가 된다는 것이다. 조회수가 나오면 구독자가 늘고, 구독자가 늘면 광고와 후원 수익이 발생하고, 수익이 생기면 다시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 유인이 생긴다. 그러면 갈등은 사건이 끝나도 콘텐츠로 계속 살아남는다.
## 중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서도 관영매체와 인터넷 여론이 결합해 상대국의 자극적인 행동을 확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논란이다. 한국에서는 판정 불만이 커졌고, 중국에서는 한국 선수와 한국에 대한 반발이 확산됐다. YTN의 당시 현지 보도에서도 환구시보가 한국 선수들의 실격을 한국 측 책임으로 해석하고 중국 네티즌이 그 논리를 따라가는 현상이 소개됐다. BTS RM이 한국 선수에게 남긴 응원 표시까지 중국 인터넷에서 '중국 모욕' 논란으로 번졌다.
이렇게 되면 평범한 한국인과 평범한 중국인은 서로 만날 기회가 없는데도 상대를 싫어하게 된다. 서로가 보는 것은 상대국 국민 전체가 아니라, 상대방 인터넷에서 가장 화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2024년 — 중국은 싫지만 중요한 나라
2024년 EAI 조사는 이 관계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상은 63.9%, 긍정적 인상은 19.6%였다. 그런데 "한중관계가 한국에게 중요하다"는 응답은 무려 85.9%였다.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부정적 인상의 이유도 흥미롭다.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중국의 환경 문제 영향(44.2%), 한국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39.4%), 사드 보복 등 강압적 행동(38.3%)이었다. 여기서 동북공정은 더 이상 가장 큰 이유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불만이 역사에서 안보로, 경제보복으로, 환경과 존중의 문제로 옮겨간 것이다.
## 2025년 — 다시 한류가 문을 두드리다
2025년부터 또 재미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와 K-pop에 대한 제한이 조금씩 완화되는 움직임이 보인 것이다. 2025년 4월에는 2016년 이후 9년 만에 전원 한국 국적으로 구성된 K-pop 그룹의 중국 내 단독 상업공연이 정식 허가됐고, 중국 외교부도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개방적 태도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것을 한한령의 완전한 종료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2025년에도 일부 한국 공연이 취소·연기됐고, 중국 정부는 '한한령'이라는 명문화된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완전한 해제도 완전한 차단도 아닌, 점진적 완화 단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 결국 무엇이 한국과 중국을 멀어지게 했는가?
처음에는 한류가 두 나라를 가까워지게 했다. 드라마에서 음악으로, 음식으로, 관광과 상품과 사람으로 — 문화가 경제와 사람을 연결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역사 갈등, 경제 경쟁, 북한 문제, 천안함, 사드, 경제보복, 코로나, 환경·문화 원류 갈등, 그리고 미중 경쟁.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의 해석이 달랐다. 한국은 중국의 행동을 "한국을 무시한다", "압박한다", "북한 편을 든다"로 읽었고, 중국은 한국의 행동을 "미국을 따라 중국을 견제한다", "중국 안보를 무시한다", "중국을 적대한다"로 읽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서로의 해석이 충돌했다. 그리고 언론은 그중 가장 강한 말을 골라 국민에게 보여줬고, 인터넷은 그것을 퍼뜨렸고, 유튜브는 다시 영상으로 만들었고,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오래 보는 콘텐츠를 계속 추천했다. 그렇게 분노가 조회수가 되기 시작했다.
## 그래서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동북공정 하나가 범인은 아니다. 천안함도, 사드도, 코로나도 아니다. 각각은 실제 사건이었고, 각각 한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대응한 사건이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 단계,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발생했다.
같은 사건을 "우리에게 위협이다"라고 해석하면 분노가 생긴다. 상대가 그것을 다시 "저들은 우리를 적대한다"라고 해석하면 반발이 나온다. 그 반발을 상대방 언론이 "중국이 또 한국을 공격했다" 혹은 "한국이 또 중국을 도발했다"라고 보도한다. 그러면 다음 사건에서는 이미 상대를 의심하며 시작한다. 이것이 해석의 악순환이다.
## 1992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답이 보인다
1992년에는 서로가 필요했다. 1997년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1억 5천만 명이 봤고, 2000년 H.O.T. 공연에 중국 청소년이 열광했다. 2008년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가 됐고, 2014년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단독 방문했으며, 2015년 한중 FTA를 체결했다. 그런데 2016년 사드를 거치며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고, 2020년 코로나를 거치며 국민 감정은 더 악화됐다. 그럼에도 2025년 중국 젊은 세대는 여전히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한국 가수의 중국 공연이 다시 허가되기 시작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좋아했다가 싫어하고, 싫어하면서도 필요로 하고,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도 문화를 소비한다.
## 결국 싸움을 키운 것은 '사건'보다 '프레임'이다
사건은 한 번 발생하고 끝난다. 하지만 프레임은 계속 살아남는다. "중국은 원래 한국을 싫어한다", "한국은 원래 중국을 무시한다" 같은 프레임이 한번 만들어지면, 다음 사건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기존 프레임의 증거가 된다. 중국이 뭘 하면 "역시 중국은 저렇다", 한국이 뭘 하면 "역시 한국은 미국 편이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의 평범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은 중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중국인은 한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보고, 그것을 상대국 국민 전체의 모습이라 여긴다.
과거에는 언론이 이 역할을 맡았고, 인터넷 시대에는 네티즌이, 지금은 유튜버와 SNS까지 가세했다. 그리고 여기에 강력한 보상이 하나 붙었다. 조회수다. 조회수가 오르면 구독자가 늘고, 구독자가 늘면 돈이 된다. 그러니 갈등은 끝내는 것보다 계속 만드는 편이 콘텐츠 사업자에게 유리한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한중관계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먼저 돌을 던졌느냐만 볼 것이 아니라, **누가 그 돌을 계속 집어 들게 만들었느냐**를 봐야 한다.
1992년에는 한류가 두 나라를 가까워지게 했고, 2020년대에는 미디어가 서로의 가장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두 나라를 멀어지게 했다. 한류는 서로의 좋은 모습을, 갈등 콘텐츠는 서로의 화난 모습을 보여줬다. 어쩌면 한중관계의 역사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가까워지고 화난 모습만 보여주면 멀어지는, 아주 단순한 인간관계의 원리를 국가 차원에서 반복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선택지는 남아 있다. 한국과 중국이 다시 친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의 국익과 안보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상대국 국민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방식의 해석은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싸울 문제는 정부끼리 싸우고, 문화와 사람까지 적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것. 그것이 1992년부터 지금까지의 한중관계를 길게 놓고 봤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