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던 한국과 중국을 싸움붙인 '언론'

2026-08-16
잘 지내던 한국과 중국을 싸움붙인 '언론' — 권력정치, 조작선동
1992년 한중 수교 무렵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한국에게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었고, 중국에게 한국은 앞선 경험과 기술을 가진 파트너였다. 사람과 물건이 빠르게 오갔고, 두 나라는 서로가 필요했다.

내가 과거 중국 베이징 호텔에 머무르면서 TV를 켰는데 정말 황당한 것을 보았다. 일기예보 지도에 한국이 없다. 일본 하나만 점으로 찍혔다. 그래서 생각했다. "한국은 중국에서 모르는구나"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녁 정규 뉴스에서 '동방신기'가 중국에 방문한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었다. 아.. 이런.. 그렇다.. 원래 중국은 한국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갈등이 하나씩 쌓였다. 동북공정, 천안함, 사드, 코로나. 사건은 저마다 달랐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이 더 큰 싸움을 만들었다.

동북공정으로 싸움붙여볼까?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 체계 안에서 해석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중국이 우리 역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문제로 보도했다. 그러자 중국에서는 그 반발을 "한국의 민족주의적 과민반응"으로 뿌렸다.

한쪽은 "중국이 역사를 훔친다", 다른 쪽은 "한국이 우리 역사를 부정한다". 서로의 행동에 의미를 덧씌우기 시작하자, 역사 논쟁은 토론이 아니라 어느새 국가 대 국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했다.

천안함으로 싸움붙여볼까?

2010년 천안함은 본래 북한의 공격 여부와 중국의 대응이 핵심인 사건이었다. 중국의 소극적 태도 뒤에는 북한 정권의 생존, 한반도 안정, 미군 영향력 견제 같은 복잡한 계산이 얽혀 있었다.

하지만 국민에게 전달된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한국에선 "중국은 북한 편", 중국에선 "한국은 미국 편에 서서 우리를 압박한다". 복잡한 외교가 순식간에 "우리 편이냐 저쪽 편이냐"의 문제로 납작해졌다.

사드로 싸움붙여볼까?

2016년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배치됐다. 한국에선 "북한을 막는 방어체계", 중국에선 "중국 안보를 침해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같은 무기를 두고 두 나라가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론은 상대의 가장 강한 반응을 골라 전했다. 한국에선 중국의 경제보복과 한한령이 부각됐고, 중국에선 사드가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이 강조됐다. 한중 언론 보도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뉴스의 번역·편집·프레이밍이 상대국에 대한 국민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불난 집에 시너를 끼얹는 유튜버

과거에는 언론이 해석하면 국민이 그 뉴스를 보는 구조였다. 지금은 다르다. 유튜버도 해석자가 됐다.

유튜버는 사건을 그대로 전할 필요가 없다. 제목 하나로 방향을 정한다. "중국이 한국을 무시했다." 긴 외교 자료보다 짧고 강한 주장 하나가 훨씬 잘 소비되고, 자극적일수록 더 잘 퍼진다.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수가 오르면 유튜버에겐 수익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의 갈등은 끝없이 재생산되는 고리가 된다.

결국 범인은 '사건'이 아니었다

동북공정도, 천안함도, 사드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사건을 "저 나라가 우리를 공격했다", "저 나라는 원래 우리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로 계속 번역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번 만들어진 프레임은 다음 사건의 해석까지 결정한다. 중국이 뭘 하면 "역시 중국은 저렇다", 한국이 뭘 하면 "역시 한국은 미국 편이다". 그 순간부터 상대의 행동은 사실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해석된다.

알고리즘은 이 고리를 더 조인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이야기와 닮은 콘텐츠를 계속 보게 되고, 그래서 한국인은 중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중국인은 한국의 가장 화난 얼굴을 본다. 서로의 평범한 모습은 사라지고, 가장 성난 모습만 남는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나라 국민이 서서히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

그래서 진짜 범인은 '조회수'

한중관계의 진짜 문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이다. 사건이 아니라, 클릭수와 구독자와 돈을 위해서 사건을 적대감으로 번역하는 프레임이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만든 주체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과거엔 언론이 중심이었고, 지금은 거기에 유튜버와 SNS가 가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