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의 예수님 사진, 기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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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의 예수님 사진, 기적이었을까? — 기독교, 종교 ‹ ›
눈밭의 예수님 사진, 기적이었을까? · 이미지: 하예라노트 (자유 이용)
이 그림. 한 번쯤 교회나 할머니 댁 벽에서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림 아래에는 늘 같은 이야기가 붙어 있다. 의심 많던 중국인 사진사가 "주의 얼굴을 보면 믿겠다"고 기도했고, 마음속 음성에 따라 눈 녹은 들판을 찍었더니 필름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의 원본 필름, 사진사의 이름, 촬영 장소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영미권에서는 이 그림을 두고 전혀 다른 기원 이야기들이 함께 전해져 왔다. 그중 가장 그럴듯한 세 가지를 시간 순서대로 살펴본다.

1. 1930년대 디트로이트 - "뒤집어 본 개 사진"설


가장 이른 시기를 주장하는 이야기다. 한 미국인은 1930년대 디트로이트에서 어머니가 이웃에게 이 사진의 원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웃이 자기가 키우던 개 코리를 찍었는데,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 보니 예수님의 얼굴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원본은 지금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림자와 디테일이 훨씬 많았으며, 현재의 흑백 이미지는 여러 번 복사되면서 뭉개진 결과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미지를 뒤집어 개의 형태를 맞춰보면 머리와 몸통 정도만 겨우 짐작될 뿐, 다리나 꼬리 같은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흑백음영으로 찍는것도 불가능하고, 달마시안이라고 해도 그 개의 점이 매우 작다.

2. 1940년대 초 - "번개 치는 하늘"설


두 번째는 하늘을 찍었다는 이야기다. 한 증언자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1941년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수녀가 된 할머니의 친구가 번개 폭풍을 찍었더니 이 얼굴이 나왔다고 들었다고 했다. 비슷한 계열로, 2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 상공을 날던 항공기 조종사가 찍었다는 이야기, 폭풍 속을 비행하던 조종사가 하늘을 찍었다는 푸에르토리코의 구전도 있다.

먹구름의 짙은 덩어리와 번개 빛의 대비라면 강한 흑백 사진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러나 구름은 가장자리가 부드럽고 몽글몽글하게 번지는 반면, 이 그림의 얼룩은 테두리가 날카롭게 끊기고 잘게 찢어진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구름 사진이라고 보기엔 질감이 맞지 않는다.

3. 1937~1945년 중국 - "녹아가는 눈밭"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영어권에서 전해지는 원형에 따르면, 일본의 중국 침략 이후 주변 사람들이 기독교로 돌아서는 것을 지켜보던 한 중국인 사진사가 신앙 문제로 괴로워하다가 기도 끝에 녹아가는 눈과 그 사이로 드러난 검은 땅을 찍었다. 같은 뿌리로 보이는 다른 버전에서는 주인공이 1939년 겨울 만주의 한 선교사로, 일본군 때문에 앞날이 막막하던 중 어깨에 멘 카메라가 저절로 셔터를 눌렀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실린 그림은 1950년대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널리 퍼졌다. 1958년 영국 신문 Sunday People에서 처음 봤다는 증언, 1950년대 말 텍사스의 한 가게 벽에 크게 걸려 있었고 뒷면에 같은 이야기가 적힌 엽서도 팔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한국에 들어온 버전은 이 영어 전도지를 번역하면서 배경이 "2차 대전 말기"로 조금 바뀐 것으로 보인다.

사진사의 이름이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세 가지 설 가운데 사진 속 무늬를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것은 이 이야기다.

결론 — 사진이 말해주는 것은 "눈밭"이다


세 가지 설을 그림에 하나씩 대입해 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개 사진설은 얼굴이 아닌 개의 형태를 맞추려면 없는 귀와 다리를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하고, 번개 하늘설은 구름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이 원본의 날카로운 얼룩과 어긋난다. 반면 녹아가는 눈밭은 다르다. 울퉁불퉁하게 끊긴 테두리, 크게 뭉친 덩어리 주변으로 잘게 흩어진 조각들, 흰 눈과 검은 흙의 뚜렷한 대비까지, 원본 그림의 특징이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결국 이 그림은 실제로 눈 녹은 땅을 찍은 사진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 사진이 고대비로 인화되고 복사되는 과정에서 중간 톤이 사라졌고, 우연히 그 안에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한 누군가에 의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