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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상태에서 회개가 가능할까?

2026-09-09
억울한 상태에서 회개가 가능할까? — 심리학, 기독교
나의 억울함은 사실이다.

사실 많은 죄에는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국가의 한계 때문이다. 아이디어나 예산 부족으로 '경고판'이나 '법개정' '윤리' 등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기 때문에 터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수, 내지는 몰라서 짓는 죄'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법적으로 인정을 안 해주는 것이다. 인정을 안 해주니까 국가는 더 교육을 안하는 악순한에 빠진다.

거기에 세상 자체가 안 싸울 수가 없다. 거대한 세상의 톱니바퀴 자체가 싸움을 만든다.
풍습이 변하니 착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싸우고, 코로나 때문에 가족끼리 부딪히고, 지도자가 벌인 전쟁 때문에 군인들이 죽어나가고, 강대국 갈등으로 작은 나라가 손해 본다. 정작 원인 제공을 한 힘센 쪽은 쏙 빠지고, 남은 사람들만 마주 앉아 책임을 나눈다.

그래서 다들 억울하다. 한쪽은 "왜 하필 나야" 억울하고, 다른 쪽은 "이게 나 혼자 잘못이야?"

원인제공자는 빠지고 다른 피해자가 피고가 된다.

가장 많은 다툼을 만드는 건 사실 개인이 아니라 그 위의 거대한 구조들이다. 그런데 그 구조는 책임을 다 지지 않는다. 나라가 자기 잘못을 다 배상하면 부도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나라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낫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채로 굴러간다.

그러면 남는 건 억울한 가해자와 억울한 피해자뿐이다. 바로 여기서 회개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회개는 성격이 차갑냐 따뜻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불완전한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다.

모두가 "나는 피해자다"라고만 하면, 세상엔 전쟁만 남는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잘못을 먼저 본다면, 세상은 돌아간다. 억울함 속에서 하는 회개는 그래서 위대하다. 그것은 나 하나 낮아짐으로 세상을 한 뼘 굴러가게 하는 일이다.

자유의 재료는 억울함이다.

성경에서 아담은 죄를 짓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한 문장에 두 번의 떠넘기기가 들어 있다. 이것을 신의 입장에서 보자.

자유의지를 안 주면 생명체가 아니다. 근데 자유의지를 줬더니 천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인간도 배신할까봐 검증장치 선악과와 뱀'을 만들었더니 이걸 또 왜 만들었냐고 난리다.
독거아담이 외로워서 건강악화될까봐 하와를 주었더니 '하와를 줘서' 선악과 먹었다고 하나님께 따진다.

책임을 물고 늘어지면 결국 시스템이 다운된다. 결과는 낙원 밖에서의 '개고생'이다.

그래서, 억울한데 회개가 되는가

억울한 데 회개한다는 것은 시스템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천지창조 시스템 자체가 억울함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회개는 단순히 착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억울한 사람이 자기 책임의 몫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관계와 사회가 계속 굴러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억울함이 남아 있는데도 "그래도 내가 준 상처는 내가 지겠다"고 말하는 것. 이게 훨씬 어렵고, 그래서 훨씬 깊다. 역시 회개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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