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된다 - 딜레마
신데렐라와 콩쥐의 반전
신데렐라의 언니들과 한국의 팥쥐는 어머니가 곱게, 귀하게 키운 탓에 게으르고 살이 쪘다.
반면에 신데렐라와 콩쥐는 구박을 받아서 부지런하고 겸손해졌고, 못 먹어서 날씬한 S라인이 되었다.
여기에서 부모의 딜레마가 나온다. 부모가 자식을 곱게 키우면 세상에 나가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직장이고 결혼이고 쉽게 포기할 테니까.
반대로 구박해서 키우면 세상에 나가서 쉽게 적응할 것이다. 허나 부모에 대해 원한을 품을 것이다.
나의 시련은 복인가, 저주인가?
고민과 걱정, 공포가 아예 없으면 사람은 잘 움직이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는다. 불안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신호다.
문제는 그 불안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다. 움직이면 그것은 항해이고 발전이지만,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표류다. 이것 역시 딜레마다. 시련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표류냐 항해냐 — 태풍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어려움은 당신을 파괴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 온다."
사람은 편안할 때 자기 능력의 한계를 잘 모른다. 돈이 충분하면 절약하는 능력이, 일이 잘되면 위기관리 능력이, 건강하면 몸의 소중함이, 옆에 사람이 있으면 혼자 서는 힘이 필요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상황이 바뀐다. 돈이 떨어지고, 사람이 떠나고, 사업이 흔들리고, 몸이 아프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평소에 쓰지 않던 힘을 꺼낸다. "내가 이것까지 할 수 있었나?"
어려움은 새로운 힘을 만들어준다기보다, 원래 내 안에 있었지만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았던 힘을 발견하게 만든다.
"잔잔한 바다는 결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적당한 어려움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
동물 실험이 그 원리를 보여준다. 생쥐에게 가벼운 스트레스를 간헐적으로 준 집단은, 그런 경험이 없는 집단보다 이후 새로운 스트레스 상황에서 덜 얼어붙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나은 회복력을 보인다.
심리학자 마크 시어리(Mark Seery) 연구팀에 따르면, 역경을 거의 안 겪은 사람도 스트레스에 약하고 극심한 역경을 많이 겪은 사람도 힘들어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역경을 경험한 사람들이 가장 회복력 있는 반응을 보인다.
작고 감당할 만한 어려움은 마음에 놓는 예방주사와 같다. 시험에 한 번 떨어져 보고, 작은 사업이 한 번 삐끗해 보고, 관계가 한 번 틀어져 본 사람은, 그 경험을 통해 "이런 일이 와도 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항체를 만든다.
반대로 매운 걸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에게 신라면이나 불닭은 지옥이다.
신은 당신의 준비 상태를 묻지 않는다
모세는 "나는 못 합니다"에서 민족의 지도자가 됐고, 다윗은 작은 목동에서 짐승들과 싸우다가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쓰러뜨렸다. 요셉은 배신과 감옥을 거치며 능력을 계속 써서 국가적 위기를 해결했다.
하나님은 이들이 위인이라서 이렇게 거칠게 다룬 게 아니다. 우리도 똑같이 다루신다.
"견뎌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내가 너희 앞길의 모든 돌을 치워준다면 너희는 돌을 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넘어질 때마다 대신 일으켜 세운다면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고통을 막아준다면 편안할 수는 있어도 강해질 수는 없다.
세상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때로는 거대한 파도가 너희를 덮칠 것이다. 그러므로 견뎌라. 너희가 미워서가 아니다. 나는 너희가 더 강해져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온실 속의 꽃으로는 폭풍을 견딜 수 없다. 그러나 바람을 맞고, 비를 맞고, 꺾일 듯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나무는 점점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고통이 너희에게 왔을 때 나는 그것이 너희를 완전히 무너뜨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신데렐라의 언니들과 한국의 팥쥐는 어머니가 곱게, 귀하게 키운 탓에 게으르고 살이 쪘다.
반면에 신데렐라와 콩쥐는 구박을 받아서 부지런하고 겸손해졌고, 못 먹어서 날씬한 S라인이 되었다.
여기에서 부모의 딜레마가 나온다. 부모가 자식을 곱게 키우면 세상에 나가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직장이고 결혼이고 쉽게 포기할 테니까.
반대로 구박해서 키우면 세상에 나가서 쉽게 적응할 것이다. 허나 부모에 대해 원한을 품을 것이다.
나의 시련은 복인가, 저주인가?
고민과 걱정, 공포가 아예 없으면 사람은 잘 움직이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는다. 불안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신호다.
문제는 그 불안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다. 움직이면 그것은 항해이고 발전이지만,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표류다. 이것 역시 딜레마다. 시련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표류냐 항해냐 — 태풍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어려움은 당신을 파괴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 온다."
사람은 편안할 때 자기 능력의 한계를 잘 모른다. 돈이 충분하면 절약하는 능력이, 일이 잘되면 위기관리 능력이, 건강하면 몸의 소중함이, 옆에 사람이 있으면 혼자 서는 힘이 필요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상황이 바뀐다. 돈이 떨어지고, 사람이 떠나고, 사업이 흔들리고, 몸이 아프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평소에 쓰지 않던 힘을 꺼낸다. "내가 이것까지 할 수 있었나?"
어려움은 새로운 힘을 만들어준다기보다, 원래 내 안에 있었지만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았던 힘을 발견하게 만든다.
"잔잔한 바다는 결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적당한 어려움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
동물 실험이 그 원리를 보여준다. 생쥐에게 가벼운 스트레스를 간헐적으로 준 집단은, 그런 경험이 없는 집단보다 이후 새로운 스트레스 상황에서 덜 얼어붙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나은 회복력을 보인다.
심리학자 마크 시어리(Mark Seery) 연구팀에 따르면, 역경을 거의 안 겪은 사람도 스트레스에 약하고 극심한 역경을 많이 겪은 사람도 힘들어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역경을 경험한 사람들이 가장 회복력 있는 반응을 보인다.
작고 감당할 만한 어려움은 마음에 놓는 예방주사와 같다. 시험에 한 번 떨어져 보고, 작은 사업이 한 번 삐끗해 보고, 관계가 한 번 틀어져 본 사람은, 그 경험을 통해 "이런 일이 와도 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항체를 만든다.
반대로 매운 걸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에게 신라면이나 불닭은 지옥이다.
신은 당신의 준비 상태를 묻지 않는다
모세는 "나는 못 합니다"에서 민족의 지도자가 됐고, 다윗은 작은 목동에서 짐승들과 싸우다가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쓰러뜨렸다. 요셉은 배신과 감옥을 거치며 능력을 계속 써서 국가적 위기를 해결했다.
하나님은 이들이 위인이라서 이렇게 거칠게 다룬 게 아니다. 우리도 똑같이 다루신다.
"견뎌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내가 너희 앞길의 모든 돌을 치워준다면 너희는 돌을 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넘어질 때마다 대신 일으켜 세운다면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고통을 막아준다면 편안할 수는 있어도 강해질 수는 없다.
세상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때로는 거대한 파도가 너희를 덮칠 것이다. 그러므로 견뎌라. 너희가 미워서가 아니다. 나는 너희가 더 강해져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온실 속의 꽃으로는 폭풍을 견딜 수 없다. 그러나 바람을 맞고, 비를 맞고, 꺾일 듯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나무는 점점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고통이 너희에게 왔을 때 나는 그것이 너희를 완전히 무너뜨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1. "적당한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는 연구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마크 시어리(Mark Seery), 앨리슨 홀먼(Alison Holman), 록산 실버(Roxane Silver)의 연구다. 전국 단위 표본을 장기간 추적한 이 연구에서는, 역경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람보다 적당한 정도의 역경을 경험한 사람이 이후의 정신건강과 주관적 안녕에서 더 좋은 결과를 보이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반대로 역경이 지나치게 많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더 취약한 결과를 보였다.
즉 "고난이 많을수록 강해진다"가 아니다. 고난이 전혀 없어도 취약할 수 있고, 지나치게 많아도 무너질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역경을 경험한 사람이 오히려 회복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에세이의 "적당한 어려움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 부분에 가장 잘 들어간다.
2. "시련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연구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다. 역경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고 해서, 고통 그 자체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심각한 역경은 정서적·행동적 문제의 위험을 높인다. 16,916명의 영국 아동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가정의 불리한 환경과 역경이 정서·행동 문제와 관련되었으며, 여기에 가혹한 부모 훈육까지 더해진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이 글의 핵심 딜레마는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정확하다.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을 부서뜨릴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시련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라, 시련의 강도와 기간,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받는 지원에 달려 있다.
3. "부모가 모든 것을 막아주는 것이 과연 사랑인가?"
이 부분에도 근거가 있다. 한국 고등학생 96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부모의 과보호가 자녀의 회복탄력성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아정체감과 불안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29개 연구, 176개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부모의 과보호가 자녀의 내재화·외현화 문제와 정적인 관련성을 보였다.
그래서 "자식을 사랑한다 = 모든 어려움을 대신 제거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일부러 주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스스로 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4. "그렇다고 구박해서 키우는 것이 답인가?" — 아니다
이 부분이 글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연구들은 엄격함과 학대·가혹함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부모의 가혹한 훈육은 오히려 정서적·행동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반면 따뜻한 양육 행동은 청소년의 역경 회복력과 매우 중요한 관련이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도 양육과 돌봄이 역경 상황에서 회복력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부모의 선택지는 "곱게 키우기 vs 구박해서 키우기" 둘 중 하나가 아니다. 진짜 제3의 길이 있다. 사랑은 충분히 주되, 모든 장애물을 대신 치워주지는 않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양육 연구와도 더 잘 맞는다.
5. "불안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여기에도 재미있는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 전통적으로 여키스-도슨(Yerkes-Dodson) 법칙은 각성 수준과 수행 능력 사이에 역U자 관계가 있다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각성이 너무 낮으면 수행이 떨어지고, 적절한 수준에서는 수행이 좋아지며, 지나치게 높으면 다시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신호다"라는 방향은 살릴 수 있다. 다만 불안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은 아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적당한 긴장은 행동을 준비하게 만들지만,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6. "시련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개념이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다. 심리학자 리처드 테데스키(Richard Tedeschi)와 로렌스 칼훈(Lawrence Calhoun)은, 심각한 위기와 싸워가는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이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인간관계의 변화, 개인적 강인함의 증가, 가치관의 변화, 영적·실존적 변화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마크 시어리(Mark Seery), 앨리슨 홀먼(Alison Holman), 록산 실버(Roxane Silver)의 연구다. 전국 단위 표본을 장기간 추적한 이 연구에서는, 역경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람보다 적당한 정도의 역경을 경험한 사람이 이후의 정신건강과 주관적 안녕에서 더 좋은 결과를 보이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반대로 역경이 지나치게 많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더 취약한 결과를 보였다.
즉 "고난이 많을수록 강해진다"가 아니다. 고난이 전혀 없어도 취약할 수 있고, 지나치게 많아도 무너질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역경을 경험한 사람이 오히려 회복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에세이의 "적당한 어려움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 부분에 가장 잘 들어간다.
2. "시련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연구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다. 역경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고 해서, 고통 그 자체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심각한 역경은 정서적·행동적 문제의 위험을 높인다. 16,916명의 영국 아동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가정의 불리한 환경과 역경이 정서·행동 문제와 관련되었으며, 여기에 가혹한 부모 훈육까지 더해진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이 글의 핵심 딜레마는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정확하다.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을 부서뜨릴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시련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라, 시련의 강도와 기간,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받는 지원에 달려 있다.
3. "부모가 모든 것을 막아주는 것이 과연 사랑인가?"
이 부분에도 근거가 있다. 한국 고등학생 96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부모의 과보호가 자녀의 회복탄력성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아정체감과 불안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29개 연구, 176개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부모의 과보호가 자녀의 내재화·외현화 문제와 정적인 관련성을 보였다.
그래서 "자식을 사랑한다 = 모든 어려움을 대신 제거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일부러 주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스스로 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4. "그렇다고 구박해서 키우는 것이 답인가?" — 아니다
이 부분이 글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연구들은 엄격함과 학대·가혹함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부모의 가혹한 훈육은 오히려 정서적·행동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반면 따뜻한 양육 행동은 청소년의 역경 회복력과 매우 중요한 관련이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도 양육과 돌봄이 역경 상황에서 회복력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부모의 선택지는 "곱게 키우기 vs 구박해서 키우기" 둘 중 하나가 아니다. 진짜 제3의 길이 있다. 사랑은 충분히 주되, 모든 장애물을 대신 치워주지는 않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양육 연구와도 더 잘 맞는다.
5. "불안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여기에도 재미있는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 전통적으로 여키스-도슨(Yerkes-Dodson) 법칙은 각성 수준과 수행 능력 사이에 역U자 관계가 있다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각성이 너무 낮으면 수행이 떨어지고, 적절한 수준에서는 수행이 좋아지며, 지나치게 높으면 다시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신호다"라는 방향은 살릴 수 있다. 다만 불안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은 아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적당한 긴장은 행동을 준비하게 만들지만,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6. "시련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개념이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다. 심리학자 리처드 테데스키(Richard Tedeschi)와 로렌스 칼훈(Lawrence Calhoun)은, 심각한 위기와 싸워가는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이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인간관계의 변화, 개인적 강인함의 증가, 가치관의 변화, 영적·실존적 변화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개념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