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망한게 아니고, 리모델링 중입니다
인생이 한순간에 내려앉는 날이 있다. 가출, 퇴사, 폐업, 질병, 이혼. 이름은 달라도 무너지는 소리는 똑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에 쥔 게 없다. 통장은 깨끗하고 대출 내역은 빼곡하다. 그러면 사람은 자기 인생에 팻말을 건다. "망했다."
그런데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헐리는 것은 다르다. 무너진 자리에는 폐허가 남고, 헐린 자리에서는 공사가 시작된다. 겉으로는 둘 다 먼지가 날리고 잔해가 쌓인다. 차이는 그 현장에 설계도가 있느냐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맡기신 일은 이랬다.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렘 1:10) 허무는 말이 넷, 세우는 말이 둘이다. 그런데 문장은 세우는 데서 끝난다. 하나님의 철거는 언제나 건축으로 끝나는 문장이다.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주워 먹었다. 그러다 가나안 땅의 곡식을 처음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다(수 5:12). 예고도 없었다.
이건 벌이 아니라 졸업이었다. 받아먹던 삶에서 땅을 밟고 일구는 삶으로, 하나님이 인생의 틀 자체를 바꾸신 것이다.
같은 땅을 보고도 반응은 갈렸다.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민 13:33)라며 주저앉았고, 백성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울었다. 채찍 맞던 시절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그때 갈렙은 말했다. "능히 이기리라."(민 13:30)
우리도 무너진 회사와 관계와 건강을 붙잡고 "예전으로만 돌려 주세요" 하고 기도한다. 하지만 새 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담기지 않는다(마 9:17). 벽지만 새로 바르는 리모델링으로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다음 시대를 담을 수 없다. 기초부터 다시 놓는 재건축이어야 한다. 만나가 그쳤다면 그건 새 땅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다시 지으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무너진 사람 손에는 남은 게 없다.
빈 들에 장정만 오천 명이 모였을 때 제자들 손에 있던 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다. 제자들은 계산부터 했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은 계산 대신 명령하셨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그리고 다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였다. 재료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 남아돌았다.
엘리사를 찾아온 과부도 그랬다. 빚쟁이가 두 아들을 종으로 끌고 가겠다는데 집에 남은 건 기름 한 그릇뿐이었다. 엘리사는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라고 했다. 기름은 흘러넘쳤다. 그런데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그쳤더라."(왕하 4:6)
기름이 바닥나서 멈춘 게 아니었다. 그릇이 바닥나서 멈췄다. 하나님의 공급에는 끝이 없다. 끝은 내가 내민 그릇의 개수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가진 게 없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미래는 이미 차 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롬 4:17)다. 인생 재건축의 재료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믿음이다.
벤츠를 사서 마당에 세워 두고 닭장으로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쓸 수는 있다. 비도 막아 주고 바람도 막아 주고 문도 잠긴다. 하지만 그걸 보고 차를 참 잘 쓴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쓰고는 있지만 목적대로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다. 열심히 살았다고, 돈을 벌었다고, 남보다 앞섰다고 목적대로 산 건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생을 내 욕심 가둬 두는 닭장으로 쓰고 있을 수도 있다.
바울은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폐허 위에 다시 세운 건물이 성전이 되고, 등기부등본에 적힌 주인의 이름이 바뀐다.
주인이 바뀌면 질문도 바뀐다. "어떻게 하면 내가 잘살까?"에서 "하나님, 남은 인생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로. 돈은 목적에서 사명의 도구가 되고, 건강은 행복의 조건에서 섬김의 도구가 된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면 그걸로 충분해진다.
그러니 지금 인생이 공사판 같다면 너무 일찍 "망했다"는 팻말을 걸지 마라. 그 자리에 붙일 말은 따로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에 쥔 게 없다. 통장은 깨끗하고 대출 내역은 빼곡하다. 그러면 사람은 자기 인생에 팻말을 건다. "망했다."
그런데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헐리는 것은 다르다. 무너진 자리에는 폐허가 남고, 헐린 자리에서는 공사가 시작된다. 겉으로는 둘 다 먼지가 날리고 잔해가 쌓인다. 차이는 그 현장에 설계도가 있느냐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맡기신 일은 이랬다.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렘 1:10) 허무는 말이 넷, 세우는 말이 둘이다. 그런데 문장은 세우는 데서 끝난다. 하나님의 철거는 언제나 건축으로 끝나는 문장이다.
첫째, 삶의 구조부터 재건축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주워 먹었다. 그러다 가나안 땅의 곡식을 처음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다(수 5:12). 예고도 없었다.
이건 벌이 아니라 졸업이었다. 받아먹던 삶에서 땅을 밟고 일구는 삶으로, 하나님이 인생의 틀 자체를 바꾸신 것이다.
같은 땅을 보고도 반응은 갈렸다.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민 13:33)라며 주저앉았고, 백성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울었다. 채찍 맞던 시절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그때 갈렙은 말했다. "능히 이기리라."(민 13:30)
우리도 무너진 회사와 관계와 건강을 붙잡고 "예전으로만 돌려 주세요" 하고 기도한다. 하지만 새 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담기지 않는다(마 9:17). 벽지만 새로 바르는 리모델링으로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다음 시대를 담을 수 없다. 기초부터 다시 놓는 재건축이어야 한다. 만나가 그쳤다면 그건 새 땅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둘째, 믿음의 재료로 재건축하십니다
다시 지으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무너진 사람 손에는 남은 게 없다.
빈 들에 장정만 오천 명이 모였을 때 제자들 손에 있던 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다. 제자들은 계산부터 했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은 계산 대신 명령하셨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그리고 다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였다. 재료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 남아돌았다.
엘리사를 찾아온 과부도 그랬다. 빚쟁이가 두 아들을 종으로 끌고 가겠다는데 집에 남은 건 기름 한 그릇뿐이었다. 엘리사는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라고 했다. 기름은 흘러넘쳤다. 그런데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그쳤더라."(왕하 4:6)
기름이 바닥나서 멈춘 게 아니었다. 그릇이 바닥나서 멈췄다. 하나님의 공급에는 끝이 없다. 끝은 내가 내민 그릇의 개수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가진 게 없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미래는 이미 차 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롬 4:17)다. 인생 재건축의 재료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믿음이다.
셋째, 인생의 용도까지 재건축하십니다
벤츠를 사서 마당에 세워 두고 닭장으로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쓸 수는 있다. 비도 막아 주고 바람도 막아 주고 문도 잠긴다. 하지만 그걸 보고 차를 참 잘 쓴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쓰고는 있지만 목적대로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다. 열심히 살았다고, 돈을 벌었다고, 남보다 앞섰다고 목적대로 산 건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생을 내 욕심 가둬 두는 닭장으로 쓰고 있을 수도 있다.
바울은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폐허 위에 다시 세운 건물이 성전이 되고, 등기부등본에 적힌 주인의 이름이 바뀐다.
주인이 바뀌면 질문도 바뀐다. "어떻게 하면 내가 잘살까?"에서 "하나님, 남은 인생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로. 돈은 목적에서 사명의 도구가 되고, 건강은 행복의 조건에서 섬김의 도구가 된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면 그걸로 충분해진다.
"리모델링 중입니다. 시공자: 하나님."
그러니 지금 인생이 공사판 같다면 너무 일찍 "망했다"는 팻말을 걸지 마라. 그 자리에 붙일 말은 따로 있다.
[첫째] 삶의 구조부터 재건축하십니다
여호수아 5:12
가나안 소산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다는 본문이에요. (본문 구절)
민수기 13:30 / 13:33 / 14:3 / 14:9
갈렙 "능히 이기리라", 정탐꾼 "메뚜기 같으니", 백성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여호수아·갈렙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 대조 구조로 쓰시면 돼요.
출애굽기 16:3
"애굽 땅의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를 그리워하는 장면
→ "과거의 틀이 좋습니다" 부분에 딱이에요.
신명기 1:6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 이제 떠날 때라는 말씀. 머물러 있는 인생에 도전하기 좋아요.
여호수아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 리더도, 시대도 바뀌었다. 구조 변경 그 자체예요.
여호수아 3:4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 한 번도 안 가본 길. 새 구조로 들어가는 두려움에 써먹기 좋아요.
여호수아 1:9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사야 43:18-19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 첫째 대지 결론부 강추해요.
마태복음 9: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리모델링 말고 재건축" 논리에 완벽해요. 헌 부대 수선으로는 안 된다는 거.
고린도후서 5:17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빌립보서 3:13-14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누가복음 9:6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이사야 54:2
"네 장막터를 넓히며"
→ 새 구조는 더 크게 짓는 거라는 포인트로요.
[둘째] 믿음의 재료로 재건축하십니다
요한복음 6:9-13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 "앉게 하라" → 열두 바구니 남음
→ 남은 게 열두 바구니라는 것까지 꼭 넣으세요. 재료 부족이 아니라 남아돌았다는 게 포인트예요.
열왕기하 4:1-7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 4:6 "그릇이 다 차매… 기름이 그쳤더라"
→ 기름은 그릇이 없어서 멈췄어요. 하나님이 아니라 내 믿음의 그릇이 한계라는 거, 이거 진짜 설교 포인트예요.
열왕기상 17:12-14
사르밧 과부 "먹고 죽으리라" →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사장님 원래 원고에 있던 장면, 이 구절로 따로 쓰셔도 돼요.
출애굽기 4:2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니이다"
→ 하나님은 항상 "네가 가진 게 뭐냐"부터 물으세요. 오병이어랑 엘리사랑 같은 패턴이라 세 개 묶으면 멋있어요.
사사기 6:14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사무엘상 17:45
다윗의 물맷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 떡 다섯 개 같은 작은 재료 무시하지 말라는 포인트요.
로마서 4:17-18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 둘째 대지 결론 구절이에요.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3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았다는 말씀
→ 하나님은 원래 무에서 지으시는 분이에요.
고린도후서 4:18 / 5:7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마가복음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7:20
겨자씨만한 믿음
에베소서 3:20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하박국 3:17-18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그러나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 통장 깨끗한 성도들한테 진짜 와닿을 구절이에요.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셋째] 인생의 용도까지 재건축하십니다
누가복음 19:31
"주가 쓰시겠다 하라"
→ 사장님 이거 강추예요!! 평범한 나귀 새끼가 예수님 태우는 용도로 바뀐 장면이에요. 닭장 된 고급차 예화 다음에 바로 넣으면 대박이에요.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성령의 전…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20절까지 같이 읽으시면 "주인이 바뀌었다"는 결론이 바로 나와요.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지어진 목적, 즉 용도가 있다는 직접적인 말씀이에요.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 건축주의 설계 의도 그 자체예요.
디모데후서 2:21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 "주인의 쓰심" 표현이 설교 결론이랑 딱 맞아요.
로마서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로마서 14:8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갈라디아서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 바로 앞에 넣으면 좋아요.
고린도후서 5:15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재건축 이미지랑 성전 이미지가 한 구절에 다 있어요.
에베소서 2:21-22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는 말씀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 건축 설교에 빠지면 섭한 구절이에요.
마태복음 7:24-25
반석 위에 지은 집
누가복음 12:20
어리석은 부자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 "돈 많이 벌었다고 목적대로 산 건 아니다" 부분에 써요.
마태복음 6:24 / 6:3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돈이 목적에서 도구로" 부분에요.
고린도전서 10:31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결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요엘 2:25
"내가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그 여러 해 동안 먹은 것을 내가 너희에게 갚아 주리라"
→ 사장님 이거 보세요!! 첫째 대지에서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했잖아요. 결론에서 "메뚜기가 먹어버린 세월까지 갚아주신다"로 받으면 수미상관 완전 쩔어요.
학개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 무너진 성전 재건축 본문이에요. 결론 강추!
이사야 61:3-4
"재를 대신하여 화관을…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아모스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키고"
욥기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편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예레미야애가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아침마다 새로우니"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공사 시작하신 분이 준공까지 책임지신다. 마무리 축복 구절로 좋아요.
요한계시록 21:5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여호수아 5:12
가나안 소산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다는 본문이에요. (본문 구절)
민수기 13:30 / 13:33 / 14:3 / 14:9
갈렙 "능히 이기리라", 정탐꾼 "메뚜기 같으니", 백성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여호수아·갈렙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 대조 구조로 쓰시면 돼요.
출애굽기 16:3
"애굽 땅의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를 그리워하는 장면
→ "과거의 틀이 좋습니다" 부분에 딱이에요.
신명기 1:6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 이제 떠날 때라는 말씀. 머물러 있는 인생에 도전하기 좋아요.
여호수아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 리더도, 시대도 바뀌었다. 구조 변경 그 자체예요.
여호수아 3:4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 한 번도 안 가본 길. 새 구조로 들어가는 두려움에 써먹기 좋아요.
여호수아 1:9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사야 43:18-19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 첫째 대지 결론부 강추해요.
마태복음 9: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리모델링 말고 재건축" 논리에 완벽해요. 헌 부대 수선으로는 안 된다는 거.
고린도후서 5:17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빌립보서 3:13-14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누가복음 9:6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이사야 54:2
"네 장막터를 넓히며"
→ 새 구조는 더 크게 짓는 거라는 포인트로요.
[둘째] 믿음의 재료로 재건축하십니다
요한복음 6:9-13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 "앉게 하라" → 열두 바구니 남음
→ 남은 게 열두 바구니라는 것까지 꼭 넣으세요. 재료 부족이 아니라 남아돌았다는 게 포인트예요.
열왕기하 4:1-7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 4:6 "그릇이 다 차매… 기름이 그쳤더라"
→ 기름은 그릇이 없어서 멈췄어요. 하나님이 아니라 내 믿음의 그릇이 한계라는 거, 이거 진짜 설교 포인트예요.
열왕기상 17:12-14
사르밧 과부 "먹고 죽으리라" →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사장님 원래 원고에 있던 장면, 이 구절로 따로 쓰셔도 돼요.
출애굽기 4:2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니이다"
→ 하나님은 항상 "네가 가진 게 뭐냐"부터 물으세요. 오병이어랑 엘리사랑 같은 패턴이라 세 개 묶으면 멋있어요.
사사기 6:14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사무엘상 17:45
다윗의 물맷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 떡 다섯 개 같은 작은 재료 무시하지 말라는 포인트요.
로마서 4:17-18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 둘째 대지 결론 구절이에요.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3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았다는 말씀
→ 하나님은 원래 무에서 지으시는 분이에요.
고린도후서 4:18 / 5:7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마가복음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7:20
겨자씨만한 믿음
에베소서 3:20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하박국 3:17-18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그러나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 통장 깨끗한 성도들한테 진짜 와닿을 구절이에요.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셋째] 인생의 용도까지 재건축하십니다
누가복음 19:31
"주가 쓰시겠다 하라"
→ 사장님 이거 강추예요!! 평범한 나귀 새끼가 예수님 태우는 용도로 바뀐 장면이에요. 닭장 된 고급차 예화 다음에 바로 넣으면 대박이에요.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성령의 전…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20절까지 같이 읽으시면 "주인이 바뀌었다"는 결론이 바로 나와요.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지어진 목적, 즉 용도가 있다는 직접적인 말씀이에요.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 건축주의 설계 의도 그 자체예요.
디모데후서 2:21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 "주인의 쓰심" 표현이 설교 결론이랑 딱 맞아요.
로마서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로마서 14:8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갈라디아서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 바로 앞에 넣으면 좋아요.
고린도후서 5:15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재건축 이미지랑 성전 이미지가 한 구절에 다 있어요.
에베소서 2:21-22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는 말씀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 건축 설교에 빠지면 섭한 구절이에요.
마태복음 7:24-25
반석 위에 지은 집
누가복음 12:20
어리석은 부자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 "돈 많이 벌었다고 목적대로 산 건 아니다" 부분에 써요.
마태복음 6:24 / 6:3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돈이 목적에서 도구로" 부분에요.
고린도전서 10:31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결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요엘 2:25
"내가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그 여러 해 동안 먹은 것을 내가 너희에게 갚아 주리라"
→ 사장님 이거 보세요!! 첫째 대지에서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했잖아요. 결론에서 "메뚜기가 먹어버린 세월까지 갚아주신다"로 받으면 수미상관 완전 쩔어요.
학개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 무너진 성전 재건축 본문이에요. 결론 강추!
이사야 61:3-4
"재를 대신하여 화관을…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아모스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키고"
욥기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편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예레미야애가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아침마다 새로우니"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공사 시작하신 분이 준공까지 책임지신다. 마무리 축복 구절로 좋아요.
요한계시록 21:5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