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보살' 이 만들어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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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 부처님과 보살님이 끝도 없이 나온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극락전에는 아미타불, 약사전에는 약사여래, 그 옆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까지.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불교를 처음 연 석가모니는 거의 혼자였다. 그는 신을 섬기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스스로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초기 경전에 나오는 다른 부처라고 해 봐야 먼 과거의 부처들과 미래에 올 미륵 정도다. 그런데 어느새 그 곁에 수많은 동료가 생겼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후대에 생겼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오래된 형태로 담은 초기 경전(팔리어 니까야, 한역 아함경)에는 아미타불도, 약사여래도, 관세음보살도, 지장보살도, 문수보살도, 보현보살도 나오지 않는다. 초기 경전 역시 오랫동안 입으로 전해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들의 흔적이 불상 명문과 번역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석가모니가 떠나고 수백 년 뒤인 기원 전후,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난 인도 북서부와 중앙아시아에서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이야기가 덧붙고 모습이 바뀌었다.
보살이라는 말 자체는 '깨달음을 구하는 존재'라는 뜻이고, 대승불교에서는 수행하는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 개념이 아니라, 관음이나 지장처럼 이름과 얼굴을 가진 특정한 보살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이다. 크게 네 가지 길이 있다.
가장 오래되고 흔한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본생담(자타카)이다. 지혜로운 원숭이, 몸을 던진 토끼, 무리를 구한 사슴 같은 이야기가 수백 편 실려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원래 인도에 돌던 민담과 우화다. 여기에 "이 원숭이가 바로 전생의 부처님이었다"는 한 줄을 붙이면 불교 설화가 된다. 인도 우화집 판차탄트라나 이솝 우화와 줄거리가 겹치는 이야기들이 그 흔적이다. 사람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로 가르침을 쉽게 전하려는 방편이었던 셈이다.
지장보살의 효녀 이야기도 같은 구조로 볼 수 있다.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딸이 정성으로 구해내고, 그 딸이 훗날 지장보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목련존자가 지옥의 어머니를 구한다는 우란분 설화와 뼈대가 거의 같다. 효를 중시한 중국 사회에서 크게 사랑받던 이야기 틀에 지장보살을 주인공으로 얹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이 이야기가 실린 『지장보살본원경』은 산스크리트 원본이 남아 있지 않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경전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 죽은 뒤 "사실 그분은 보살이 사람 모습으로 오신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붙는 방식이다.
배가 불룩 나오고 활짝 웃는 포대화상은 10세기 중국에 실제로 살았던 승려 계차다. 그가 죽을 때 자신이 미륵이라는 뜻의 게송을 남겼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원래 인도의 단정한 미륵보살 대신 이 뚱뚱한 스님이 미륵의 얼굴이 되었다.
신라 왕족 출신의 김교각 스님은 중국 구화산에서 수행하다 입적했는데, 사후에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다. 그 덕분에 구화산은 지금까지 지장보살의 성지로 불린다.
우리가 아는 여성의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도 이 길로 만들어졌다. 인도에서 관세음보살은 원래 남성 보살이었다. 그런데 중국 송나라 무렵,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눈과 팔을 내준 묘선 공주가 사실 관음보살이었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관음은 점점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방식은 정치에도 쓰였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자신을 미륵의 화신으로 내세웠고,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긴다.
불교가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면 그곳 사람들은 이미 자기 신을 믿고 있었다. 불교는 그 신들을 쫓아내기보다 받아들여 불교의 보살이나 수호신으로 만들었다.
일본의 길가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수많은 지장보살 석상이 좋은 예다. 원래 마을 경계를 지키고 여행자와 아이를 보호하던 토착 신앙이 지장보살과 합쳐지면서 생긴 모습이다. 인도 힌두교의 여신 사라스바티는 불교로 들어와 변재천이 되었다. 지장보살이 인도 대지의 여신과 관련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것은 아직 가설 단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절마다 있는 산신각과 칠성각도 같은 원리다. 한국의 산신과 칠성 신앙이 불교 사찰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마지막은 이야기도, 실존 인물도 없이 생각 자체를 사람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보현보살은 실천을 사람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처음에 별다른 인생 이야기가 없고, 대신 뜻을 담은 상징물이 있다. 문수보살이 든 칼은 번뇌를 끊는 지혜이고, 타고 있는 사자는 두려움 없음이다. 보현보살이 탄 흰 코끼리는 큰 힘을 가졌지만 온순한 실천을 뜻한다. 이야기는 나중에 붙었다.
여기에는 일종의 공식도 있다. "아주 먼 옛날 어떤 스님이나 왕이 있었다. 그가 중생을 위해 몇 가지 서원을 세웠다. 셀 수 없는 세월 수행한 끝에 부처가 되었다."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의 48서원, 약사여래의 12서원이 모두 이 틀을 따른다. 무한한 빛, 병의 치유 같은 사람들의 바람을 이 공식에 채워 넣으면 새로운 부처가 탄생한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후대에 생겼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오래된 형태로 담은 초기 경전(팔리어 니까야, 한역 아함경)에는 아미타불도, 약사여래도, 관세음보살도, 지장보살도, 문수보살도, 보현보살도 나오지 않는다. 초기 경전 역시 오랫동안 입으로 전해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들의 흔적이 불상 명문과 번역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석가모니가 떠나고 수백 년 뒤인 기원 전후,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난 인도 북서부와 중앙아시아에서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이야기가 덧붙고 모습이 바뀌었다.
보살이라는 말 자체는 '깨달음을 구하는 존재'라는 뜻이고, 대승불교에서는 수행하는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 개념이 아니라, 관음이나 지장처럼 이름과 얼굴을 가진 특정한 보살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이다. 크게 네 가지 길이 있다.
첫째, 원래 있던 이야기의 주인공에 보살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가장 오래되고 흔한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본생담(자타카)이다. 지혜로운 원숭이, 몸을 던진 토끼, 무리를 구한 사슴 같은 이야기가 수백 편 실려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원래 인도에 돌던 민담과 우화다. 여기에 "이 원숭이가 바로 전생의 부처님이었다"는 한 줄을 붙이면 불교 설화가 된다. 인도 우화집 판차탄트라나 이솝 우화와 줄거리가 겹치는 이야기들이 그 흔적이다. 사람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로 가르침을 쉽게 전하려는 방편이었던 셈이다.
지장보살의 효녀 이야기도 같은 구조로 볼 수 있다.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딸이 정성으로 구해내고, 그 딸이 훗날 지장보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목련존자가 지옥의 어머니를 구한다는 우란분 설화와 뼈대가 거의 같다. 효를 중시한 중국 사회에서 크게 사랑받던 이야기 틀에 지장보살을 주인공으로 얹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이 이야기가 실린 『지장보살본원경』은 산스크리트 원본이 남아 있지 않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경전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둘째, 실존 인물을 보살의 화신으로 만든다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 죽은 뒤 "사실 그분은 보살이 사람 모습으로 오신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붙는 방식이다.
배가 불룩 나오고 활짝 웃는 포대화상은 10세기 중국에 실제로 살았던 승려 계차다. 그가 죽을 때 자신이 미륵이라는 뜻의 게송을 남겼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원래 인도의 단정한 미륵보살 대신 이 뚱뚱한 스님이 미륵의 얼굴이 되었다.
신라 왕족 출신의 김교각 스님은 중국 구화산에서 수행하다 입적했는데, 사후에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다. 그 덕분에 구화산은 지금까지 지장보살의 성지로 불린다.
우리가 아는 여성의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도 이 길로 만들어졌다. 인도에서 관세음보살은 원래 남성 보살이었다. 그런데 중국 송나라 무렵,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눈과 팔을 내준 묘선 공주가 사실 관음보살이었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관음은 점점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방식은 정치에도 쓰였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자신을 미륵의 화신으로 내세웠고,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긴다.
셋째, 그 땅의 토착신을 흡수한다
불교가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면 그곳 사람들은 이미 자기 신을 믿고 있었다. 불교는 그 신들을 쫓아내기보다 받아들여 불교의 보살이나 수호신으로 만들었다.
일본의 길가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수많은 지장보살 석상이 좋은 예다. 원래 마을 경계를 지키고 여행자와 아이를 보호하던 토착 신앙이 지장보살과 합쳐지면서 생긴 모습이다. 인도 힌두교의 여신 사라스바티는 불교로 들어와 변재천이 되었다. 지장보살이 인도 대지의 여신과 관련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것은 아직 가설 단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절마다 있는 산신각과 칠성각도 같은 원리다. 한국의 산신과 칠성 신앙이 불교 사찰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넷째, 추상적인 개념에 이름과 모습을 준다
마지막은 이야기도, 실존 인물도 없이 생각 자체를 사람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보현보살은 실천을 사람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처음에 별다른 인생 이야기가 없고, 대신 뜻을 담은 상징물이 있다. 문수보살이 든 칼은 번뇌를 끊는 지혜이고, 타고 있는 사자는 두려움 없음이다. 보현보살이 탄 흰 코끼리는 큰 힘을 가졌지만 온순한 실천을 뜻한다. 이야기는 나중에 붙었다.
여기에는 일종의 공식도 있다. "아주 먼 옛날 어떤 스님이나 왕이 있었다. 그가 중생을 위해 몇 가지 서원을 세웠다. 셀 수 없는 세월 수행한 끝에 부처가 되었다."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의 48서원, 약사여래의 12서원이 모두 이 틀을 따른다. 무한한 빛, 병의 치유 같은 사람들의 바람을 이 공식에 채워 넣으면 새로운 부처가 탄생한다.
📚 출처 보기
석가모니 시대 경전에 나오는 부처
과거칠불: 팔리 장부(Dīgha Nikāya) 14경 「대본경(Mahāpadāna Sutta)」, 한역 『장아함경』 「대본경」.
미륵(Metteyya): 팔리 장부 26경 「전륜성왕사자후경(Cakkavatti-sīhanāda Sutta)」. 팔리 경장에서 미륵이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경이다.
대승 보살의 등장 시기
아미타불 최초 물증: 인도 마투라 고빈드나가르 출토 불상 대좌 명문, 쿠샨 후비슈카 왕 26년(대략 2세기 중반). Gregory Schopen, “The Inscription on the Kuṣān Image of Amitābha and the Character of the Early Mahāyāna in India”,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10-2 (1987).
초기 한역: 2세기 후반 지루가참(Lokakṣema)의 번역 경전에 아미타불, 아촉불, 문수보살이 등장한다. Jan Nattier, A Guide to the Earliest Chinese Buddhist Translations (2008).
대승 초기 성격 연구: Jan Nattier, A Few Good Men (2003). 초기 대승이 대중 운동이 아니라 소수 수행자 집단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대승 경전의 정당성 논쟁
대승경전이 불설(佛說)이 아니라는 비판과 이에 대한 대승 측의 반박은 『대승장엄경론』 등에 남아 있다.
용수가 용궁에서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전설: 구마라집 번역 『용수보살전』.
첫째, 이야기에 보살 이름을 붙이는 경우
본생담
팔리 『자타카』 547편. 영역본은 E. B. Cowell 편, The Jātaka (1895~1907).
기원전 2세기 바르후트 스투파 부조에 본생 장면과 그 이름이 새겨져 있어, 본생담이 이미 이 시기에 유통되었음을 보여준다.
판차탄트라와의 공통 설화: 원숭이와 악어 이야기(Vānara Jātaka)가 판차탄트라 제4권과 같은 줄거리다.
지장보살 효녀 이야기와 목련 설화
바라문 여인과 광목녀 이야기: 『지장보살본원경』 「도리천궁신통품」, 「염부중생업감품」.
목련 설화: 『불설우란분경』(서진 축법호 번역으로 전함). Stephen F. Teiser, The Ghost Festival in Medieval China (1988)가 이 경과 중국 효 사상의 관계를 다룬다.
『지장보살본원경』은 당 실차난타 번역으로 전하지만 당·송 시기 경록에 보이지 않다가 후대에 등장하며, 산스크리트·티베트 대응본이 없다. 중국 찬술 가능성에 대해서는 Zhiru Ng, The Making of a Savior Bodhisattva: Dizang in Medieval China (2007).
저승 시왕 신앙: Stephen F. Teiser, The Scripture on the Ten Kings and the Making of Purgatory in Medieval Chinese Buddhism (1994).
둘째, 실존 인물을 화신으로 만드는 경우
포대화상
『송고승전』(988) 권21 「계차전」.
『경덕전등록』(1004) 권27. 임종 게송 "미륵진미륵 분신천백억(彌勒真彌勒 分身千百億)"이 실려 있다.
김교각
비관경(費冠卿), 『구화산화성사기』(813). 그의 생애를 전하는 가장 이른 기록이다.
『송고승전』 권20 「지장전」. 신라 왕족 출신 김지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성 관음과 묘선 공주
1100년 장지기(蔣之奇)가 하남 향산사에 세운 비문이 묘선 전설의 가장 이른 형태로 꼽힌다.
Glen Dudbridge, The Legend of Miao-shan (1978).
Chün-fang Yü, Kuan-yin: The Chinese Transformation of Avalokiteśvara (2001). 관음의 여성화 과정을 다룬 대표 연구다.
측천무후와 미륵
690년 『대운경소(大雲經疏)』가 측천무후를 미륵의 하생으로 해석했다. 돈황 사본으로 남아 있다.
Antonino Forte, Political Propaganda and Ideology in China at the End of the Seventh Century (1976).
달라이 라마와 관음
티베트 전승서 『마니카분(Maṇi bka’ ‘bum)』이 송첸감포 왕을 관음의 화신으로 서술하며, 이 관념이 이후 달라이 라마 계보로 이어진다.
셋째, 토착신 흡수
일본 지장
Hank Glassman, The Face of Jizō: Image and Cult in Medieval Japanese Buddhism (2012). 길가 수호신(도소신) 신앙과의 결합, 어린이 수호 신앙의 형성을 다룬다.
변재천
『금광명경』 「대변재천녀품」. 힌두 여신 사라스바티가 불교 경전 안에 들어온 사례다.
지장과 대지 여신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 지장이 대지와 연결되는 표현이 있어 인도 대지 여신 프리티비와의 관련설이 나오지만, 학계에서 확정된 견해는 아니다.
산신각·칠성각
조선 후기 사찰에 본격적으로 세워졌다. 김영재, 『한국 산신 신앙』 등 국내 민속학 연구가 다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신각', '칠성각' 항목에서 개요를 확인할 수 있다.
넷째, 개념의 인격화와 서원 공식
문수·보현
Étienne Lamotte, “Mañjuśrī”, T’oung Pao 48 (1960). 문수의 문헌상 등장과 발전을 정리한 고전적 연구다.
보현 10대 행원: 당 반야(般若) 번역 40권 『화엄경』(798) 「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서원 공식
아미타불 48원: 『무량수경』(강승개 번역으로 전함).
약사여래 12원: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현장 번역, 650).
약사경 초기 한역본에 대해 양나라 승우는 『출삼장기집』 권5에서 송 대명 원년(457) 비구 혜간(慧簡)이 경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라 기록했다. 길기트에서 산스크리트 사본이 발견되어 인도 기원 자체는 인정된다. Raoul Birnbaum, The Healing Buddha (1979).
아미타불 이란 기원설
빛의 신앙과 조로아스터교의 연관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으나, 후지타 고타츠(藤田宏達), 『원시정토사상의 연구(原始浄土思想の研究)』(1970)는 이를 비판하고 인도 내부 기원을 주장했다. 현재도 논쟁 중이다.
추가 이야기: 한국 사례
의상과 낙산사 관음: 『삼국유사』 권3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의상이 동해 굴에서 관음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로, 관음이 한국 땅에 머문다는 신앙의 출발점이다. 같은 조에 실린 조신 설화는 꿈속 인생을 통해 무상을 깨닫는 이야기로, 이광수의 『꿈』의 원천이 되었다.
자장과 오대산 문수: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를 만나고 돌아와 강원도 오대산을 문수 성지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성지를 한국에 옮겨 심은 사례다.
진표와 미륵·지장: 『삼국유사』 권4 「진표전간」, 『송고승전』 권14 「진표전」. 진표가 혹독한 참회 수행 끝에 지장과 미륵에게서 계를 받았다는 이야기로, 금산사 미륵 신앙의 기원이 된다.
경흥과 문수: 『삼국유사』 권5 「경흥우성」. 국사 경흥 앞에 초라한 거사로 나타난 문수가 그의 교만을 꾸짖는 이야기다. 보살이 누구의 모습으로든 나타난다는 화신 관념이 한국 설화에 녹아든 예다.
석굴암 본존불: 석가모니불설이 다수이고 아미타불설이 있다. 비로자나불로 보는 견해는 소수다. 강우방 등 미술사 연구에서 논쟁이 정리되어 있다.
과거칠불: 팔리 장부(Dīgha Nikāya) 14경 「대본경(Mahāpadāna Sutta)」, 한역 『장아함경』 「대본경」.
미륵(Metteyya): 팔리 장부 26경 「전륜성왕사자후경(Cakkavatti-sīhanāda Sutta)」. 팔리 경장에서 미륵이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경이다.
대승 보살의 등장 시기
아미타불 최초 물증: 인도 마투라 고빈드나가르 출토 불상 대좌 명문, 쿠샨 후비슈카 왕 26년(대략 2세기 중반). Gregory Schopen, “The Inscription on the Kuṣān Image of Amitābha and the Character of the Early Mahāyāna in India”,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10-2 (1987).
초기 한역: 2세기 후반 지루가참(Lokakṣema)의 번역 경전에 아미타불, 아촉불, 문수보살이 등장한다. Jan Nattier, A Guide to the Earliest Chinese Buddhist Translations (2008).
대승 초기 성격 연구: Jan Nattier, A Few Good Men (2003). 초기 대승이 대중 운동이 아니라 소수 수행자 집단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대승 경전의 정당성 논쟁
대승경전이 불설(佛說)이 아니라는 비판과 이에 대한 대승 측의 반박은 『대승장엄경론』 등에 남아 있다.
용수가 용궁에서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전설: 구마라집 번역 『용수보살전』.
첫째, 이야기에 보살 이름을 붙이는 경우
본생담
팔리 『자타카』 547편. 영역본은 E. B. Cowell 편, The Jātaka (1895~1907).
기원전 2세기 바르후트 스투파 부조에 본생 장면과 그 이름이 새겨져 있어, 본생담이 이미 이 시기에 유통되었음을 보여준다.
판차탄트라와의 공통 설화: 원숭이와 악어 이야기(Vānara Jātaka)가 판차탄트라 제4권과 같은 줄거리다.
지장보살 효녀 이야기와 목련 설화
바라문 여인과 광목녀 이야기: 『지장보살본원경』 「도리천궁신통품」, 「염부중생업감품」.
목련 설화: 『불설우란분경』(서진 축법호 번역으로 전함). Stephen F. Teiser, The Ghost Festival in Medieval China (1988)가 이 경과 중국 효 사상의 관계를 다룬다.
『지장보살본원경』은 당 실차난타 번역으로 전하지만 당·송 시기 경록에 보이지 않다가 후대에 등장하며, 산스크리트·티베트 대응본이 없다. 중국 찬술 가능성에 대해서는 Zhiru Ng, The Making of a Savior Bodhisattva: Dizang in Medieval China (2007).
저승 시왕 신앙: Stephen F. Teiser, The Scripture on the Ten Kings and the Making of Purgatory in Medieval Chinese Buddhism (1994).
둘째, 실존 인물을 화신으로 만드는 경우
포대화상
『송고승전』(988) 권21 「계차전」.
『경덕전등록』(1004) 권27. 임종 게송 "미륵진미륵 분신천백억(彌勒真彌勒 分身千百億)"이 실려 있다.
김교각
비관경(費冠卿), 『구화산화성사기』(813). 그의 생애를 전하는 가장 이른 기록이다.
『송고승전』 권20 「지장전」. 신라 왕족 출신 김지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성 관음과 묘선 공주
1100년 장지기(蔣之奇)가 하남 향산사에 세운 비문이 묘선 전설의 가장 이른 형태로 꼽힌다.
Glen Dudbridge, The Legend of Miao-shan (1978).
Chün-fang Yü, Kuan-yin: The Chinese Transformation of Avalokiteśvara (2001). 관음의 여성화 과정을 다룬 대표 연구다.
측천무후와 미륵
690년 『대운경소(大雲經疏)』가 측천무후를 미륵의 하생으로 해석했다. 돈황 사본으로 남아 있다.
Antonino Forte, Political Propaganda and Ideology in China at the End of the Seventh Century (1976).
달라이 라마와 관음
티베트 전승서 『마니카분(Maṇi bka’ ‘bum)』이 송첸감포 왕을 관음의 화신으로 서술하며, 이 관념이 이후 달라이 라마 계보로 이어진다.
셋째, 토착신 흡수
일본 지장
Hank Glassman, The Face of Jizō: Image and Cult in Medieval Japanese Buddhism (2012). 길가 수호신(도소신) 신앙과의 결합, 어린이 수호 신앙의 형성을 다룬다.
변재천
『금광명경』 「대변재천녀품」. 힌두 여신 사라스바티가 불교 경전 안에 들어온 사례다.
지장과 대지 여신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 지장이 대지와 연결되는 표현이 있어 인도 대지 여신 프리티비와의 관련설이 나오지만, 학계에서 확정된 견해는 아니다.
산신각·칠성각
조선 후기 사찰에 본격적으로 세워졌다. 김영재, 『한국 산신 신앙』 등 국내 민속학 연구가 다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신각', '칠성각' 항목에서 개요를 확인할 수 있다.
넷째, 개념의 인격화와 서원 공식
문수·보현
Étienne Lamotte, “Mañjuśrī”, T’oung Pao 48 (1960). 문수의 문헌상 등장과 발전을 정리한 고전적 연구다.
보현 10대 행원: 당 반야(般若) 번역 40권 『화엄경』(798) 「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서원 공식
아미타불 48원: 『무량수경』(강승개 번역으로 전함).
약사여래 12원: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현장 번역, 650).
약사경 초기 한역본에 대해 양나라 승우는 『출삼장기집』 권5에서 송 대명 원년(457) 비구 혜간(慧簡)이 경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라 기록했다. 길기트에서 산스크리트 사본이 발견되어 인도 기원 자체는 인정된다. Raoul Birnbaum, The Healing Buddha (1979).
아미타불 이란 기원설
빛의 신앙과 조로아스터교의 연관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으나, 후지타 고타츠(藤田宏達), 『원시정토사상의 연구(原始浄土思想の研究)』(1970)는 이를 비판하고 인도 내부 기원을 주장했다. 현재도 논쟁 중이다.
추가 이야기: 한국 사례
의상과 낙산사 관음: 『삼국유사』 권3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의상이 동해 굴에서 관음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로, 관음이 한국 땅에 머문다는 신앙의 출발점이다. 같은 조에 실린 조신 설화는 꿈속 인생을 통해 무상을 깨닫는 이야기로, 이광수의 『꿈』의 원천이 되었다.
자장과 오대산 문수: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를 만나고 돌아와 강원도 오대산을 문수 성지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성지를 한국에 옮겨 심은 사례다.
진표와 미륵·지장: 『삼국유사』 권4 「진표전간」, 『송고승전』 권14 「진표전」. 진표가 혹독한 참회 수행 끝에 지장과 미륵에게서 계를 받았다는 이야기로, 금산사 미륵 신앙의 기원이 된다.
경흥과 문수: 『삼국유사』 권5 「경흥우성」. 국사 경흥 앞에 초라한 거사로 나타난 문수가 그의 교만을 꾸짖는 이야기다. 보살이 누구의 모습으로든 나타난다는 화신 관념이 한국 설화에 녹아든 예다.
석굴암 본존불: 석가모니불설이 다수이고 아미타불설이 있다. 비로자나불로 보는 견해는 소수다. 강우방 등 미술사 연구에서 논쟁이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