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700명 솔로몬 vs 독신 수도사. 뭘 선택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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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700명 솔로몬 vs 독신 수도사. 뭘 선택하실? — 기독교, 종교
아내 700명 솔로몬 vs 독신 수도사. 뭘 선택하실? · 이미지: 하예라노트 (자유 이용)
수많은 여인과 쾌락을 누린 왕.
평생 여인을 모르고 기도한 수도사.
만일 둘 다 구원받는다면, 굳이 수도사의 길을 택할 이유가 있는가?

정(正), 누린 자 솔로몬


솔로몬은 지혜를 구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성전을 지었고, 성경을 쓴 왕이었다. 그는 잠언에서 젊어서 맞은 아내를 즐거워하라고 가르쳤고, 하나님은 왕에게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넘어 자신이 가진 것을 넓혀갔다. 왕비 칠백, 후궁 삼백. 그리고 늙었을 때 그의 마음은 다른 신들에게 기울었다.

받은 것을 움켜쥔 자는, 결국 마음을 잃을 수 있다.

반(反), 버린 자 수도사


그렇다면 반대로 모두 버리면 되는가?

수도사도 자동으로 이기지 않는다. 독신은 공로가 아니라 은사이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게다가 모든 것을 버린 수도사도 사실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다. 시간, 몸, 자유, 기도할 힘. 그리고 그는 버린 것마저 움켜쥘 수 있다. 나는 이만큼 참았다는 공로로.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아침부터 일한 자들은 주인 앞에서 자기 수고를 채권처럼 내민다. 왜 우리를 저들과 같게 하십니까. 버림이 거래가 되는 순간, 수도사는 다른 모습의 솔로몬이 된다.

그러니 솔로몬의 1,000명도, 수도사의 0명도 상급의 단위가 아니다.

합(合), 내어주신 분 예수


광야에서 사탄은 천하 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했다. 예수님은 권세와 영광을 자기 것으로 취하는 길을 거절하셨다.

그렇다고 그는 세상을 등진 금욕자도 아니었다. 잔치에 가셨고, 먹고 마셨고, 사람들 사이에 계셨다. 그러나 무엇도 자기를 위해 움켜쥐지 않으셨다. 누림도 버림도 그에게는 목적이 아니었다. 한 알의 밀처럼, 자기 자신을 내어주셨다.

진짜 왕은 더 많이 취해서 왕이 된 것도, 더 많이 버려서 왕이 된 것도 아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왕이 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이셨고, 하늘은 죽임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하늘


그렇다면 하늘의 상을 바라는 것은 결국 더 긴 계산 아닌가?

요한계시록 4장의 장로들이 답한다. 그들은 면류관을 받고도 그것을 움켜쥐지 않는다. 보좌 앞에 다시 내려놓는다. 사랑의 끝에는 내가 무엇을 받았는가조차 남지 않는다.

솔로몬은 받은 것을 움켜쥐다 마음을 잃었다.
수도사는 버린 것마저 움켜쥘 위험이 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셨다.
하늘의 장로들은 받은 상마저 다시 내어놓는다.

기독교가 말하는 길은 쾌락도 금욕도 아니다. 나를 향해 굽어 있던 마음이 사랑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얼마나 누렸는지를 묻는다. 하나님은 다른 것을 물으신다.

얼마나 누렸느냐도, 얼마나 버렸느냐도 아니다.
받은 것을 누구를 위해 썼느냐.